[이창용號 한은] 초긴축 시대, 리더십 시험대 오른 이창용

소통 행보 이어가며 취임 200일 맞아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10월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장. "키가 큰데 보폭도 크냐"는 취재진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이창용 총재는 "예"라고 대답하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순간 팽팽한 긴장감이 돌던 기자간담회장에도 웃음이 터졌다. 위트 속 고뇌를 담아내는 이 총재 스타일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지난 4월21일 취임식 후 오는 6일 취임 200일을 맞는 이 총재는 한은 역대 최단기간 내 최대폭 금리인상을 단행한 총재로, 한은 역사상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처음으로 밟은 총재이기도 하다. 취임 후 기준금리도 단번에 1.50%포인트나 올려 10년 만에 ‘3% 금리시대’를 다시 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4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에 이어 긴축 장기화를 시사하면서 이 총재 역시 세 번째 빅스텝을 저울질 하고 있다.

◆직설적 화법·거센 후폭풍=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이렇게 주목받았던 적은 없다."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최근의 한은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미 Fed의 고강도 긴축과 함께 중앙은행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총재는 취임 직후부터 파격적인 실험과 적극적인 소통으로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무엇보다도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지침)'는 논란의 정점이다. 지난 7월 한은이 사상 첫 빅스텝을 단행한 직후 이 총재는 "국내 물가 흐름이 현재 전망하고 있는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금리를 당분간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인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소상하게 밝혔다. 지난 8년간 신중한 언어와 태도를 보였던 이주열 전 총재식 소통방식에 익숙했던 시장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다. 서울대 교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이라는 다양한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가 축적된 결과라는 평가가 나왔다. 첫 빅스텝에 대한 시장 충격을 완화하려는 의도도 반영됐다는 해석이다.

한편에선 총재의 무게감을 고려하지 않은 ‘지나친 자신감’이라는 반론도 만만찮았다. 특히 9월 미 FOMC에서 Fed의 최종금리 상단이 상향되고, 원화가치가 급락하자 총재의 포워드 가이던스가 한미 금리 역전폭 확대에 대한 기대 강화를 통해 환율 절하를 심화시키고 시장혼란을 부추겼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런 후폭풍을 의식한 듯 총재는 지난달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강연에서 "미래 금리 경로에 대해 가급적 언급을 피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던 오랜 방식에서 벗어나기에는 현실적으로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여러 가지 애로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총재의 섭섭함이 드러난 반성문 같은 연설문에 시장은 "적극 소통하려는 이 총재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Fed의 급격한 금리인상이 이어지는 안갯속 시계 상황서 포워드 가이던스 운용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 시행착오 사례"라고 평가했다. 직설적 화법도 좋지만 때로는 시장 안정을 위한 스킬도 키워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파격적인 실험 지속= 국제통화기금(IMF)에서 8년 동안 근무한 이 총재는 절같이 조용해 '한은사(韓銀寺)'라는 비판을 받던 한은 내부 조직에 변화의 바람도 불어넣고 있다. 우선 주요 경제 현안을 주제로 구성원들이 격의 없이 의견을 나누는 IMF식 서베일런스 미팅(surveillance meeting)인 '주간현안포럼'을 도입해 내부 경쟁을 유발했다. 한은 관계자는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라 당황했지만 지금은 조직원들이 잘 적응하고 있다"면서 "10월은 금융시장 불안 때문에 '금융외환시장 리스크 비상대응 태스크포스'로 변경했지만 이달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과의 소통 강화를 위해 한은 블로그 개설을 제안한 것도 이 총재다. 지난 6월 한은 창립 72주년 기념식에서는 "계급장 떼고 할 말은 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자"고 밝혀 신선함을 던졌다. 그는 "조사역이 점심 자리에서 ‘지난번 총재님 연설문은 실망스러웠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경직된 위계질서를 없애는 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외부 사람들은 알 수도 없고 찾지도 않은 내부용 보고서만 만들지 말고 수요자 중심의 '고객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도 했다. 8년 만의 외부 출신인 이 총재는 7월 첫 인사에서 기존 관행을 깨고 IT분야 전문성과 실력을 중심으로 인재를 발탁했다. 한은 관계자는 "과거 인사에서 특정 학연이 강했다는 일부 비판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라인을 점차 배제하고 전문성 위주의 파격 인사도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면서 "7월 총재가 해당분야 전문성을 위주로 한 인사철학을 예고한 만큼 내년 1월 정기인사에는 이런 총재 스타일이 본격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달 금통위 리더십 시험대= "대단한 노력파". 이 총재가 미국 로체스터대학교 조교수 시절부터 30년 넘게 연을 맺어온 조윤제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이 총재를 이같이 평가했다. 자타공인 거시·금융 경제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지만 이런 배경에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적임자를 찾아 바로 해결하고, 질문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실함이 뒷받침됐다는 설명이다. 최근 이 총재의 수면 시간은 3~4시간에 불과하다는 후문이다.

그런 그가 취임 후 최대 시험대에 올랐다. 11월 금통위 얘기다. 석 달 만에 반등한 물가, 급등하는 원·달러 환율, 1%포인트까지 벌어진 한미 금리차로 빅스텝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자금경색·부채·성장(경기침체)이 발목을 잡으면서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의견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달 금통위는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격론이 벌어질 전망이다. 두 번째 빅스텝을 단행한 지난달 이미 베이비스텝 소수 의견을 낸 금통위원이 2명 나온 상황서 이달에는 3대3 동수로 총재가 캐스팅보트를 쥐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배제할 수 없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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