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경쟁력] 1인당 GDP 日 추격…저성장 기로서 韓 갈길은

달러당 엔화 가치 하락으로 차이 더 좁혀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문제원 기자] "한국과 일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차이가 역대 최소 차이로 좁혀졌습니다. 과거 일본과의 경제력 격차를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입니다."

최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DC에서 만난 국제통화기금(IMF) 관계자는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미국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엔화 가치가 32년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며 일본 경제가 부진을 면치 못하는 사이, 한국 경제는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실제 당시 주요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모인 IMF 회의장 안팎에서는 전세계적인 경제 불확실성 확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미국에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난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와 최근 한국을 찾은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IMF 아시아ㆍ태평양국장이 입을 모아 ‘한국의 위기 가능성은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가파른 금리인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세계 주요국의 경기가 주춤하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의 경제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달러 초강세로 엔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일본 경제의 부침이 심해지고 있어서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거치며 성장세가 주춤하는 사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일본을 바짝 추격했고, 임금과 향후 성장률도 한국이 일본을 웃도는 등 비교적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단계 높은 국가 신용등급= 한일 경제의 역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는 국가 신용등급이다. 1990년에는 3대 국제신용평가기관(무디스·S&P·피치) 세 기관 모두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을 한국보다 높게 평가했지만 올해는 한국(Aa2·AA·AA-)이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면서 한국의 신용등급이 일본(A1·A+·A)을 역전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져있는 동안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했다는 게 3개 기관의 공통된 평가다. 일본과 대비되는 국가채무도 국가 신용등급 평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사상 최초로 한·일 명목 1인당 GDP의 역전도 곧 실현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1인당 GDP 전망치(달러 기준)는 3만3591달러로, 일본(3만4357달러)과의 격차가 766달러로 최소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 150엔선에 육박하는 달러당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경우 조만간 한국의 1인당 GDP는 일본을 따라잡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일본 민간경제연구소인 니혼게이자이연구센터는 일본의 1인당 명목 GDP가 오는 2027년 한국에 추월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처럼 한일 경제 격차가 빠른 속도로 좁혀지고 있는 배경은 달러 초강세에 있다. 각국의 경제 펀더멘탈을 반영하는 통화가치는 엔화가 올해 달러 대비 21.37% 하락해 우리나라(-16.37%)는 물론 유럽(-12.34%), 영국(-14.64%), 호주(-11.29%) 등에 비해 더 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행은 상당한 외환보유액을 사용해 환율방어에 나섰지만 심리적 저항선인 달러당 150엔을 막는데 실패했다. 그럼에도 일본은행은 지난해 말 기준 1000조엔이 넘는 국가부채 때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초저금리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보다 빠른 지난해 8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리며 국제 경제 변동에 대응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처음 1400원대를 넘고 무역수지 적자도 지속되고 있지만 연간 2% 수준의 경제성장률과 연간 기준 경상수지 흑자, 4000억달러 규모의 외환보유액으로 IMF 등 국제사회에선 아직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가 다수다.

◆격차 축소 축포 일러= 하지만 일부 거시경제지표의 역전에 축포를 터트리기는 시기상조다. 최근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세계 경제를 짓누르는 가운데 한국이 비교적 선방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경제 버팀목인 수출 성장엔진이 꺼지고 있는 데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미·중 갈등으로 대외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국의 발 빠른 추격으로 한·일 경제가 전환점을 맞은 가운데 한국이 저성장 갈림길에서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해법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과거보다 향상되면서 일본을 맹추격한 것은 사실이나 일희일비할 때가 아니다"면서 "실제 일본이 심각한 위기로 충격에 빠졌던 때는 1968년 이후 42년 만에 중국의 2010년 GDP가 일본을 앞지르면서 42년 만에 중국에 세계 경제대국 2위 자리를 내줬던 당시"라고 언급했다. 지난해 기준 중국의 1인당 GDP가 1만2500달러로 일본은 물론 한국에 한참 모자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절대적인 규모에서 한일 차는 여전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저출산·고령화는 향후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최대 리스크로 꼽힌다. 이재수 전경련 아태협력팀장은 "최근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속도로 인해 생산가능인구 측면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불리해 이에 대한 대책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연구위원도 "우리보다 앞서 저출산·고령화를 겪은 일본은 사회 전반적인 대책을 선제적으로 마련·실행했다는 점이 우리와 차이점"이라며 "그 효과는 차치하더라도 대응조차 소극적인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우리의 미래가 더 암울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행도 보고서에서 "일본 정부는 일·보육의 양립 보장, 정년 연장 등을 통해 여성과 고령층의 고용률을 높였다"면서 "노동시장 구조나 관행이 유사한 우리나라도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함에 따라 일본과 동일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는 만큼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선제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위한 정책과 중장기적인 성장잠재력 유지를 위한 구조개혁의 뒷받침도 필요하다. 정대희 한국개발연구원(KDI) 글로벌경제연구실장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하고,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창업 활성화, 규제개혁을 통한 진입장벽 완화 등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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