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진기자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미국 연방수사국(FBI) 등 안보당국이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미국에 설치한 통신 장비가 미국의 핵무기 관련 통신까지 방해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23일(현지시간) CNN방송이 보도했다. 미국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이를 파악하고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CNN의 취재 결과다.
CNN은 10여 명의 전현직 국가안보 당국자를 취재해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이던 2019년 미국 내에 설치된 화웨이 장비를 철거하고 다른 장비로 교체하기로 한 배경에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고 전했다. 화웨이 장비가 민간용은 물론이고 군이 사용하는 전파에 제약을 가하고 핵무기를 관장하는 미 전략사령부의 통신까지 교란할 수 있다고 군 당국이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CNN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 초기 FBI는 콜로라도와 몬태나 주의 25번 고속도로와 네브래스카 주로 향하는 도로에서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통신 패턴을 발견했다. 통신량이 많은 구간이 핵무기 보관기지를 포함해 가장 은밀한 일부 군사 기지로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시골 지역의 소규모 통신사업자들은 비용 감축을 위해 25번 고속도로를 따라 저렴한 중국산 통신 장비를 설치하고 있었다. 이 지역의 최대 사업자인 비애로가 2011년 말 3G로 업그레이드 하기 위한 통신장비를 마련코자 화웨이와 계약을 했고, 10년간 5개 주에 1000개 가량의 타워에 화웨이 장비를 설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 소식통은 연방 당국이 이 시점 화웨이 장비가 군사기지 주변에서 확산하는 상황에 주목했고 화웨이가 수익을 내지 못할 것 같은 가격임에도 장비를 싸게 판매한다는 점에 우려를 갖기 시작했다고 CNN에 전했다. 이후 당국은 화웨이 장비 자체를 분석하기 시작했고 FBI 조사에서 이 장비가 국방부의 통신을 식별하고 방해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동시에 비애로가 2014년께 실시간으로 날씨와 교통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25번 고속도로를 따라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이를 통해 미군 장비와 요원의 이동 상황이나 활동 패턴이 포착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정보 당국은 중국이 이 카메라의 실시간 영상을 보는 것은 물론 해킹을 통해 통제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2019년 이런 조사 결과가 백악관에 보고됐고, 미 정부는 정부 보조금을 받는 시골 지역의 소규모 통신서비스 사업자들에 화웨이와 또 다른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ZTE의 장비를 철거하고 다른 장비로 교체하라고 지시했다. 미 의회도 2020년 화웨이와 ZTE 장비를 철거할 수 있도록 19억달러(약 2조5000억원)의 보상 예산을 마련했다. CNN은 연방통신위원회(FCC)에 2만4000개의 중국산 장비 철거에 대한 신청서가 접수됐지만 보상금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실제 철거가 이뤄진 곳은 아직 한 군데도 없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CNN은 미국이 2017년 워싱턴DC 내 국립수목원에 1억 달러를 들여 중국 정원을 만들겠다는 중국 정부의 제안에 솔깃했다가 없던 일로 만들었다는 비화도 공개했다. 당시 조사 결과 정보당국은 중국 공원에 들어설 탑이 워싱턴DC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설치돼 신호 정보 수집을 위한 최적의 장소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중국이 이 탑을 미 세관의 검사가 필요 없는 외교 행랑을 통해 미국으로 보내겠다고 희망한 점도 당국의 의심을 더했다.
상무부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지난해 미국 통신망에서 중국 장비를 퇴출하기 위해 더 시급한 조처가 필요한 지에 관한 자체 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