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5G 중간요금제'를 둘러싼 잡음

尹 공약과도 상반, '공정의 잣대' 필요한때

"통신 시장의 갈라파고스 규제는 끝나지 않았다."

최근 불거진 ‘5G 중간요금제’ 논란을 두고 한 통신업체 고위 임원이 한 말이다. 그는 1991년 도입된 요금 인가제가 30년 만에 폐지됐지만, ‘규제 아닌 규제’의 가격결정 구조는 여전하다고 토로했다.

SK텔레콤은 정부의 민생안정대책에 발맞춰 지난 1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5G 중간요금제를 포함한 5가지 이상의 요금제를 신고했다. 이날 공개된 요금제는 ‘월 5만9000원에 데이터 24GB’로, 여러 요금제 중 한 가지였다. 정치권은 곧바로 동일 요금에 최소 30GB 데이터 제공을 요구하고 나섰다. 설상가상으로 물가가 올랐으니 통신업체들이 요금을 인하해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통신업체에는 호통치며 전기요금은 4.3%, 도시가스는 7% 인상했다.

SKT는 유보신고제를 적용받는 사업체다. 2020년 12월 시행된 유보신고제는 과기정통부가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이용약관이 이용자 이익이나 공정 경쟁을 저해하지 않는지 살펴보고 수리 또는 반려하는 제도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가 들여다보고 의견을 내기도 전에 정치 공세는 시작됐다. 여당은 검토 시작 전부터 ‘재논의’ 요구를 하며 주무부처를 압박하고 있다. 정치권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정책과 궤를 함께 해온 여당이 오히려 대통령의 공약과 상반된 행동을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규제 개혁으로 민간 주도 혁신 성장을 이루겠다"고 공언했다. 정치권의 예상 밖 비판에 빠른 속도로 요금제 신고를 준비했던 KT와 LG유플러스는 SKT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새 요금제를 반려할 명분도 없다. 과기정통부가 마련한 반려에 대한 세부 기준은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부당하게 높은 요금을 책정하거나, 약탈적 요금제를 앞세워 경쟁사를 배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이번 요금제는 기존 유사 요금제와 비교해 이용자 비용 부담을 줄였다. 도매 대가보다 낮은 요금을 통해 경쟁사를 배제할 우려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려 사유가 되지 않는다.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실과 국민의힘 정책위원회가 14일 개최한 ‘5G 통신요금제 개편 소비자 권익 증진 토론회’에서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SKT가 신고한 요금제가 반려 조건에 해당하지 않으면 정부는 (요금제를) 수리해야 한다"면서 "자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인가제를 폐지했는데, 예전과 같은 형태로 사업자들이 요금을 인하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제도 변경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제 과기정통부의 판단이 남았다. 정부가 통신 요금 수준을 강제하는 전례는 해외에서도 찾기 힘들다. 미국 의회는 1993년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에 이통 요금에 대한 규제 폐지를 권고했다. 영국의 경우도 유선전화에 대해서 규제가 존재했으나, 2006년 가격 상한제 폐지를 계기로 요금 규제를 전면 폐지했다. 일본도 2004년부터 요금신고제가 폐지됐다. 과기정통부는 법적 근거를 토대로 공정의 잣대로 들여다봐야 할 때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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