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지 말고 기다리자'?…'빚 탕감' 노리다 큰코 다친다

[빚탕감 논란①]
금융위, 소상공인 대상 '새출발기금' 발표 후
빚 탕감 '뜨거운 감자'로 떠올라

90일 연체, 재산·상환능력 없음 입증될 때만 가능
탕감 받아도 기록 남고, 신용점수 회복에 제약

탕감보다 시중은행 장기분할상환 최대한 활용해야

[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코로나 때 받은 대출은 탕감해주나 보네요."

"전 대출 3000만원 받았는데 과연…."

"90일 이상 연체한 사람만 대상이라던데요."

"그럼 우리도 연체하죠 뭐."

19일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올라온 댓글들이다. 금융위원회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을 만들어 원금을 감면해주겠다고 밝히면서, 소상공인 사이에선 '빚 탕감'이 뜨거운 감자가 됐다. 신청 조건부터 탕감 규모와 도덕적 해이 문제, 성실히 갚은 사람만 바보라는 억울함까지. 전례 없는 조치에 사장님들이 들썩이는 중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상공인들 사이에선 '정부가 살려줄테니, 일단 갚지 말고 기다려보자'는 심리가 팽배한 것으로 보인다"며 "아직까지 빚을 갚는 것에 관심을 보이는 자영업자는 전체 대출규모에 비하면 정말 극소수"라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이 일찌감치 내놓은 자영업자·소상공인 연착륙 프로그램이 존재감이 없는 것만 봐도 이런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5월 소상공인들이 대출을 수월하게 갚을 수 있도록 '코로나19 특례운용 장기분할 전환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오는 9월 종료되는 만기연장·이자상환 유예 특례 지원을 한 차례 이상 받은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최장 10년에 걸쳐 대출을 갚을 수 있도록 한 조치다. 그런데 이 상품을 출시 한 지 두 달이 다 됐지만 가입자는 수십 명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90일 연체되면 금융 활동 모두 정지…90% 탕감은 소수 일 것

자영업자들이 물가 폭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22일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업주가 인상된 가격으로 메뉴판을 수정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문제는 무턱대고 빚 탕감만 바라다가 큰코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운영하는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을 9월 말 설립해 채무조정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새출발기금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최소 60%, 최대 90%에 이르는 원금감면이다. 원리금 혹은 이자를 90일 동안 연체한 부실차주에 한정해 신청을 받는데, 이 과정에서 신용회복위원회가 부실 차주의 재산, 수입, 상환능력을 따져 최종 대상자를 선정하는 절차를 밟는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90일 동안 연체가 되면 모든 은행거래가 중지돼, 카드 발급이나 추가 대출 같은 금융 활동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태"라며 "이런 상태의 소상공인 중에서도 재산, 수입, 상환 능력을 따져 감면율을 정하기 때문에 실제로 90%까지 원금을 탕감받는 사람들은 소수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만약 원금 60%를 감면 받고 40%는 갚아야 할 상황이라면, 40%를 다 갚을 때까진 정상적인 금융 활동을 할 수 없다"고 전했다.

원금 감면을 받으려면 재산이 부채보다 적고, 상환 능력이 없다는 것도 증명돼야 한다. 신복위 관계자는 "과거 3년 동안의 지방세 납부 내역을 포함해 도덕적 해이가 발행하지 않도록 과거 시점의 자료까지 제출해야 한다"며 "재산이 있고, 소득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지원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탕감 받으면 기록 남고 신용점수 회복 기간 오래 걸려

심사를 통과해 빚 탕감을 받는다고 해도 낙인은 찍힌다. 일반적인 금융거래에서 벗어난 구제 제도인 만큼, 정상신용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기록이 남는다. 90일 동안 연체된 금융기록은 7년 동안 보관돼 전(全)금융사들이 조회 할 수 있고, 정책 수단을 이용해 원금 감면을 받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빚을 갚은 사람보다 탕감 받은 사람의 신용점수가 회복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제약도 받게 된다.

신복위 관계자는 "시중은행의 분할상환 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천천히 갚아 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새출발기금' 지원 대상에서 빠진 대출자들의 경우 은행이 직접 기금과 같은 수준의 채무조정 조치(상환유예기간 1~3년, 장기 분할상환 10~20년)를 유도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국민은행의 '코로나19 특례운용 장기분할 전환 프로그램'의 기한 추가 연장판인 셈이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같은 금리상승기에는 상황이 어려운 자영업자를 선별해서 원금 감면 같은 지원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고 그게 금융시스템에도 도움이 된다"며 "다만 빚 탕감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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