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기자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국내 연구진이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은 줄여 사망률을 최소화할 수 있는 뇌졸중 치료제를 개발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은 문재일 뇌과학과 교수가 이성용 계명대 의대 교수와 공동으로 분자모델링 기반으로 생체 호르몬인 에리트로포이에틴(erythropoietin, EPO)의 구조를 변형시킨 펩타이드 유도체를 제작해 부작용을 최소화한 뇌졸중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했다고 28일 밝혔다.
뇌졸중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뇌경색) 터져서(뇌출혈) 사망에 이르거나 뇌손상으로 인한 신체장애가 나타나는 질환이다. 2018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사망통계에 따르면, 국내 전체 사망원인 중 4위이며 단일 질환으로는 1위이다. 일단 발생하면 생존한다 하더라도 심각한 신경학적 기능장애를 동반하는 무서운 질환이다.
에리트로포이에틴(erythropoietin, EPO)은 적혈구 생성에 관여하는 호르몬으로, 저산소 스트레스로부터 뇌를 포함한 다양한 조직에서 세포 보호 효과를 보인다. 이에 EPO나 EPO 재조합제의 신경세포 보호 기능을 활용한 뇌졸중 치료제 개발이 시도되었으나, 이들 약물을 사용하는 치료는 과도한 적혈구 생성이나 종양 유발과 같은 부작용이 있어 뇌졸중 치료제 개발에 어려움이 있었다.
연구팀은 분자모델링을 통해 EPO 수용체에 결합하는 EPO의 주요 부위인 EPO 나선구조 C(helix C)에 존재하는 여러 아미노산을 치환해 다양하게 구조를 변형시킨 새로운 펩타이드 유사체를 디자인했다. 이를 통해 선별된 펩타이드 유사체들은 약물 후보물질로 실제 합성하여 세포 보호 효과를 나타내며 펩타이드 유사체들은 EPO와 유사하게 산화적 스트레스로부터 신경세포 보호 효과를 보였으며, 활성산소 생성을 억제하였다.
연구팀은 펩타이드 유사체들 중 세포증식 효과 없이 가장 좋은 세포 보호 효과를 보이는 ML1-h3를 뇌졸중 치료제 후보물질로 주목했다. 이를 허혈성 뇌손상이 유발된 동물에 투여하니 신경세포 사멸을 막아 EPO와 유사한 정도로 뇌손상을 억제함을 확인했다. 한달 간의 장기적인 투여 결과, EPO와는 달리 ML1-h3 펩타이드는 적혈구 과다생성과 같은 혈액학적 독성은 관찰되지 않았다.
에리트로포이에틴을 뇌졸중과 같은 신경질환 치료 물질로 이용하기 위해 적혈구 과다생성과 종양화 효과를 최소화하려는 연구들이 많이 진전되어 왔다. 특히 에리트로포이에틴 수용체와 결합하는 주요 부위만을 그대로 디자인해 만든 ‘1세대’ 에리트로포이에틴 펩타이드 치료제가 제시된 바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분자모델링을 이용해 다양한 유도체를 제작했고 그 중 ML1-h3 펩타이드는 기존 에리트로포이에틴 대비 1.5배 이상 향상된 신경 보호 효과를 가지면서도 적혈구 과다생성과 종양화 효과는 거의 없는 ‘2세대’ 에리트로포이에틴 펩타이드 치료제로서 개발됐다.
허혈성 뇌졸중 치료를 위해서는 뇌경색 후 긴급한 재관류 시술과정 이후에 나타나는 뇌손상을 막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번 연구에서 개발한 ML1-h3 펩타이드가 이러한 뇌손상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에리트로포이에틴 약물들이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퇴행성 신경질환에서도 신경보호 효과가 입증되어 온 만큼 ML1-h3가 좀 더 넓은 범용성을 가진 신경질환 치료제로서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연구팀의 판단이다.
이번 연구는 동물 모델 수준에서 허혈성 스트레스 하에서의 신경보호 효과와 혈액 독성 등을 확인한 만큼 간단한 추가적인 실험이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 전임상 단계를 통과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임상시험 단계와 신약 허가 승인 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길게 잡아 10년 정도 예상된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
펩타이드 약물들은 체내 흡수 및 약물 안정성 등의 측면에서 약점을 가진다. 펩타이드 약물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여러 화학적 기술들이 최근에 제시되고 있는데, 이러한 기술들을 이용한다면 실용화를 좀 더 앞당길 수 있는 차세대 에리트로포이에틴 펩타이드 개발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일 교수는 “이번 연구는 생체 호르몬 활성 기전 이해를 기반으로, 기능성 부위에 대한 특이적 구조 변형을 통해 생체 호르몬의 여러 기능을 분리하여 조절하는 접근법을 제시하고 에리트로포이에틴 약물의 부작용을 배제한 뇌졸중 치료제 개발이 가능해졌다”며, “부작용으로 약물 개발이나 환자에 대한 사용을 꺼리던 많은 생체 단백질 호르몬들을 재소환해 환자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약물로 개발할 수 있는 방향성과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 2월 국제학술지인 ‘Redox Biology’에 발표됐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