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주형기자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지난 2015년 공개된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공상과학(SF) 영화 '엑스 마키나'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정교하게 모방한 휴머노이드 로봇 '에이바'가 등장합니다. 로봇의 몸과 사람의 얼굴을 가진 에이바는 스웨덴 출신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연기했는데, 영화에 나온 얼굴 또한 배우의 얼굴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로봇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사람같은 동작을 취하는 로봇,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대화할 수 있는 로봇 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같은 얼굴을 가진 로봇'은 현재까지 구현되지 못했습니다. 수십개의 근육을 통해 미세한 감정 변화를 나타내는 인간의 얼굴은 그 어떤 동작보다도 모방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매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가전제품 전시회 'CES 2022'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아메카'가 공개돼 대중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아메카는 영국의 로봇 기업인 '엔지니어드 아츠'가 개발한 프로토타입 로봇으로, 오로지 '사람 같은 표정을 지을 수 있는 로봇'이라는 기능에 중점을 두고 만들어졌습니다.
개발사 측에 따르면 로봇의 머리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머리 내부에는 17개의 작은 개별 모터가 있는데, 이 모터가 동작해 로봇의 근육 움직임을 제어하면서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습니다.
아메카는 지난달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먼저 공개돼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당시 엔지니어드 아츠 측은 아메카의 미소 짓는 표정, 놀라는 표정, 호기심 어린 표정 등을 선보였는데, 이를 본 누리꾼들은 "진짜 사람처럼 느껴진다", "기존 로봇에게서 느껴진 어색한 느낌이 전혀 없다" 등 호평을 쏟아냈습니다.
엔지니어드 아츠의 공식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아메카는 현재 행사용으로 렌탈·구매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아메카가 실제로 사람 주변을 걸어 다니며 대화하는 진정한 '휴머노이드'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아메카를 완전한 휴머노이드로 만들려면 여러 동작, 인공지능(AI) 플랫폼 등의 개발을 마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개발사는 "아메카의 주요 목적은 AI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있다"며 "언젠가는 로봇공학과 AI 기술의 진보를 모두 합쳐 아메카가 직접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되길 바란다"고 희망했습니다.
인간의 형태를 한 로봇, 즉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시도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져 왔습니다.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지난 1973년 가토 이치로 일본 와세다대 교수팀이 개발한 '와봇-1'입니다. 어설프지만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내장된 기기를 통해 간단한 질문에 자동으로 대답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약 50년에 걸쳐 수많은 연구팀·기업 등이 휴머노이드를 연구했고, 그 결과물도 최근에 주목받고 있습니다. 일례로 미국의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사람처럼 뛰거나 점프할 수 있는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개발했습니다. AI의 발달 덕분에 인간의 언어를 인식하고 직접 대답도 할 수 있는 로봇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지난해 인간 대신 노동을 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인 '테슬라봇'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과 같은 얼굴을 가진 로봇의 개발은 상대적으로 진척 속도가 느린 편입니다. 현재까지 공개된 휴머노이드는 인간 같은 얼굴을 장착하기보다는, 머리 부위를 디스플레이로 대체해 이미지를 띄워주는 방식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표정을 기계로 구현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작업입니다. 현재까지의 의학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인간의 얼굴에는 총 21종의 근육이 붙어 있습니다. 개수로 따지면 약 80개 가까이 됩니다. 이 근육들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면서 행복·슬픔·두려움 등 다양한 감정을 표정에 나타낼 수 있습니다.
아메카는 17개의 소형 모터로 근육의 움직임을 대체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사람같다'는 평가를 받은 아메카조차 아직 지을 수 있는 표정의 개수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좀 더 자연스럽고 절묘한 표정을 지으려면, 지금의 모터 및 제어 소프트웨어가 훨씬 더 정밀하게 변해야 합니다.
게다가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초정밀 로봇 얼굴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로봇의 '두뇌'가 적절한 표정 동작을 지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표정을 지으려면 우선 감정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로봇은 자신이 대화하는 상대방을 카메라 렌즈로 본 뒤, 그 표정을 컴퓨터 비전 AI로 분석해 감정을 '추측'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칩니다.
즉, 인간 같은 표정을 짓는 로봇을 만들려면 로봇 공학과 AI 소프트웨어 양쪽 모두 상당한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른바 '불쾌한 골짜기' 현상도 휴머노이드 개발에 큰 난제입니다. 불쾌한 골짜기는 지난 1970년대 일본 로봇 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처음 제안한 이론으로, 로봇이나 컴퓨터그래픽이 인간과 불완전하게 닮을수록 어느 순간 강한 거부감이 느껴진다는 내용입니다. 어설프게 인간을 닮은 로봇은 오히려 사람에게 혐오감만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높은 개발 난이도와 실패 위험성이 '인간의 얼굴을 가진 휴머노이드' 개발을 발목 잡는 주요 원인인 셈입니다.
하지만 아메카의 성공이 향후 로봇 표정 개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미국 IT 전문 매체 '씨넷' 등 현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아메카는 공개 이후 누리꾼 수천만명의 관심을 끌었다고 합니다.
1대에 25만달러(약 3억원) 짜리인 행사용 아메카의 경우, CES 2022 개막 이후 단 하루만에 4건의 주문 계약을 성사했습니다. 한번에 100만달러(약 12억원)의 매출을 올린 겁니다.
엔지니어드 아츠의 영업 책임자인 모건 로는 '씨넷'과 인터뷰에서 "'아이로봇'이나 'A.I.' 등 과거에는 영화로만 봤던 휴머노이드 로봇이 이제 현실이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로는 아메카가 완전한 휴머노이드로 개발되기까지는 아직 10여년 가까운 기간이 걸릴 것이며, 아직 완전히 '불쾌한 골짜기'를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아메카 이전에 완벽하게 인간 같은 로봇을 만들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그 로봇이 작동하는 모습을 보자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불쾌한 골짜기 안에 있었던 것"이라며 "그래서 아메카는 회색 톤 피부에, 플라스틱 질감이 나도록 만든 것이다. 인간과 다를수록 덜 무섭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