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애기자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은행권의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개인형퇴직연금(IRP) 자금이 증권 시장으로 이동하는 '머니무브'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다. 증권가의 중개형 ISA 도입과 IRP 수수료 0원(제로 수수료) 선언이 머니무브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중개형 ISA 인기= 2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증권사 ISA 가입자 수는 2월 말 대비 19만명이 늘어나면서 969.2% 증가했다. 가입 금액도 209억원에서 2274억원으로 989.3% 폭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은행의 ISA 가입자 수는 34만1297명이 줄었다. 지난 2월 말 7만2308명 증가와 비교하면 572% 감소했다. 가입금액도 대폭 줄었다. 508억원으로 전월(6857억원) 대비 92.6%나 줄었다.
이는 증권사의 중개형 ISA 상품 도입 덕분이다. 중개형 ISA는 위탁매매업 라이선스가 있는 증권사를 통해서만 개설할 수 있다. 기존 신탁형·일임형 ISA와 달리 가입자 본인이 국내 주식을 직접 운용할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ISA 시장은 아직은 은행 가입자 및 가입 규모가 크다. 은행은 전체 가입자 191만7901명 중 80%인 155만1148명, 전체 가입금액 7조8155억원 중 86%인 6조7288억원을 차지하고 있다. 증권사와 비교하면 가입자 수는 4.2배, 가입금액은 6.1배 높다.
그러나 올해 머니무브는 본격화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2월 삼성증권, NH투자증권에 이어 3월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KB증권, 하나금융투자, 신한금융투자 등이 중개형 ISA 계좌를 선보였다"면서 "올해 상반기까지 여러 증권사가 중개형 ISA를 선보일 예정이어서 고객의 선택 폭은 넓어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증권사 IRP 수수료 제로·수익률 높아= IRP 자금도 은행에서 증권으로 이동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증권가의 수수료 제로 선언 영향이 크다. 신호탄은 삼성증권이 지난달 금융업계에서 처음으로 신규 고객 대상 수수료 전액 면제 IRP 상품 '다이렉트 IRP'를 출시하며 쏘아 올렸다. 이후 미래에셋증권과 유안타증권도 IRP 수수료를 전액 면제하기로 했다. 신한금융투자와 KB증권, 한국투자증권 등도 가세했다.
고용노동부의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형 IRP 적립금 규모는 34조4167억원으로 전년(25조4000억원) 대비 35.5%가량 증가했다. 은행 비중이 가장 높지만 주목할 점은 증권사 비중이 증가 추세라는 것. 증권사의 적립금 규모는 지난해 약 2조5000억원 늘어났다. 적립금 비중은 2019년 20.0%에서 지난해 21.9%로 증가했다. 은행은 6조2000억원가량 적립금이 증가했지만, 전체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비중(69.3%)은 변동이 없었다.
이는 수익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에서는 IRP를 통해 상장지수펀드(ETF)나 리츠 상품을 직접 매입할 수 있어 다른 금융사에 비해 수익률이 높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증권사(14곳)의 IRP 평균 수익률은 11.21%로 집계됐다. 은행(12곳) 4.7%, 보험(17곳) 3.34% 수익률과 격차가 크다. 회사별로는 신영증권이 27.39%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어 한국포스증권(13.7%), 유안타증권(13.41%), 한국투자증권(12.49%), 미래에셋증권(11.37%), 삼성증권(11.23%) 등의 순으로 성적이 우수했다. 10년 장기수익률을 살펴보면 하나금투투자(3.18%)의 수익률이 가장 높았고 한국투자증권(3.10%), IBK연금보험(3.06%), 미래에셋증권(3.05%), 대신증권(3.01%) 등이 3% 이상 수익률을 냈다. 은행 중에서 3%대 수익률을 기록한 곳은 없었고,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의 수익률이 2.54%로 가장 높았다.
머니무브는 본격화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신증권, 한화투자증권, 현대차증권 등이 수수료 0원을 검토중이거나 참여하기로 결정을 내리면서 고객몰이에 나섰다"면서 "가입자가 운용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금융사가 가입자 투자 성향에 맞춰 알아서 퇴직연금 상품을 운영해주는 제도인 디폴트 옵션까지 도입되면 증권사의 IRP 경쟁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