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담기자
[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나랑 헤어지면 죽일 거야", "너 치마가 왜 그렇게 짧아"
남편이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이 여성을 폭행하는 이른바 '데이트 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으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데이트 폭력이 물리적 폭행을 넘어 성범죄, 살인사건 등 강력범죄로 이어지고 있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일부 데이트폭력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주변인 또는 그 가족에게까지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어 시민들의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전문가는 성 평등을 뜻하는 '성인지 감수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3일 헤어진 애인의 가족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5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헤어진 애인과 집 처분 문제로 다투다 그의 여동생 2명과 동생의 남편 1명 등 가족 3명에게 미리 준비해간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 가족들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들은 현장에서 이 남성을 현행범으로 체포해 자세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여성들이 애인으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데이트 폭력에는 팔목을 움켜잡거나 때리는 등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언어폭력, 데이트 비용 요구, 휴대전화 점검, 옷차림 통제 등도 포함된다.
경찰청이 지난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 신고 건수는 ▲2017년 1만4136건 ▲2018년 1만8671건 ▲2019년 1만9940건으로 증가했다. 지난해의 경우, 데이트폭력 관련 사건이 하루 54건 넘게 신고된 셈이다.
문제는 데이트 폭력이 성범죄나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 3월 발표한 '2019 분노의 게이지-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88명에 이른다. 살인미수를 포함하면 피해 여성은 적어도 196명이다. 최소 1.8일에 1명의 여성이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죽거나 죽을 위기를 겪는 셈이다.
가해자들은 범행 동기로 ▲피해 여성이 '이혼이나 결별을 요구하거나 가해자의 재결합 및 만남 요구를 거부해서' 58명(29.6%) ▲'홧김에'·'싸우다가 우발적으로' 58명(29.6%) ▲'다른 남성과의 관계에 대한 의심 등 이를 문제 삼아' 25명(12.8%) ▲'자신을 무시해서' 17명(8.7%) ▲'성관계를 거부해서(성폭력)' 3명(1.5%) 등을 진술했다.
최근 데이트 폭력의 범행 수법 또한 다양해지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월 헤어진 여자친구의 집 앞에 나체 사진 등을 부착하고 협박한 1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고, 지난 9월에는 여자친구의 이별 통보에 격분한 20대 남성이 여자친구의 반려견을 벽돌로 수차례 내려치고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데이트폭력을 겪은 피해자의 절반 이상은 폭력을 당한 이후에도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2018년 서울에 사는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데이트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신체적 폭력을 겪은 뒤 경찰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9.1%에 불과했다.
이들은 데이트폭력의 원인으로 '가해자에 대한 미약한 처벌'(58.7%), '여성 혐오 분위기 확산'(11.9%) 등을 꼽았다.
또 연인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데이트 폭력을 남녀 간 애정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도 잦다. 2016~2018년 3년간 데이트 폭력으로 형사입건된 사람 가운데 실제 구속된 가해자는 총 1259명으로 전체 인원(2만8915명) 중 4.4%에 불과했다.
이렇다 보니 데이트 폭력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현행법상 데이트폭력에 대한 별도의 처벌 규정이 없어, 데이트 폭력은 살인, 강간, 감금, 폭행 등을 저지르더라도 다른 범죄와 동일한 기준으로 처벌받는다.
지난 7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데이트 폭력 가해자를 엄벌해달라는 내용의 청원도 21만2867명의 동의를 얻었다.
'강서구 데이트 폭력 살인미수 사건 강력한 처벌을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에서 청원인은 "데이트폭력을 넘어서 살인까지 가야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는 건가"라며 "더 이상은 데이트폭력, 불법 촬영에 관한 범죄가 솜방망이 처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데이트폭력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부디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한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는 데이트폭력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정혜원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여성정책연구팀장은 "한국 사회에서는 데이트폭력을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개인 문제로 다루어져 온 경향이 컸다"며 "데이트폭력이 사회적 문제이자 젠더폭력이라는 이해가 우선돼야 하며, 데이트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성인지 감수성과 폭력 허용적 문화 개선이 생활화돼야 데이트폭력을 방지하고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