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슬기자
[아시아경제 컬처라이프부 이이슬 기자] "잘못을 했다면 모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데 부당하게 공격받으니 착잡하고 모욕감마저 느껴지네요."(골프장 경기보조원)
"몸이 안 좋았는데,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어) 불쾌했다."(배우 박모씨, 여)
누구 말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 골프 대중화 속에 운동을 즐기는 골퍼와 진행을 돕는 경기보조원(캐디)간 갈등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배우 등 유명인들의 경우 골프보다는 인스타그램 등 SNS 제작에 열중하면서 늑장 플레이로 인한 다툼이 적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부는 자신이 캐디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글을 SNS 등을 통해 일방적으로 내놓아 사회적 약자인 캐디가 심심치 않게 매도당하며 상처를 입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수도권의 한 골프장에서 벌어진 일화는 이런 갈등의 대표적인 사례다. 직간접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통해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정황을 살펴보면, 불만을 강하게 제기한 배우보다는 캐디의 억울한 심정이 더 도드라진다.
때는 지난 6월, 수도권의 한 골프장. 배우 박씨는 이곳에서 일행들과 골프를 즐겼다. 그의 SNS를 보면 즐거운 표정으로 골프장에서 찍은 사진들이 여럿 게시돼 있다. 하지만 해시태그 내용은 표정과 딴판이다. "쓰레기" "불쾌" "다신 안 간다" 등의 표현이 눈에 띈다. 사진의 분위기와 전혀 다른 해시태그를 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박씨의 운동조에서 서비스를 진행한 캐디에 따르면 그는 코스마다 사진을 찍고 일행과 대화를 하느라 진행이 많이 더뎠다고 한다. 7분 후 출발해 따라오던 뒷팀은 그로인해 경기 초반부터 무전으로 진행에 신경을 써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이에 이동을 조금이라도 더 신속하게 하도록 유도하려 했으나 오히려 캐디를 향해 큰 소리로 질타했다. 매 홀 연출 사진을 찍으며 늑장 플레이도 이어갔다. 운동을 마치는 순간 캐디에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
박씨의 캐디와 골프장에 대한 공격은 경기 종료 후부터 더 매서워졌다. 그는 운동을 마친 이틀 뒤 수차례 골프장으로 전화를 걸어 지급한 캐디 비용을 환불해달라고 요구했다. 환불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골프장 홈페이지에 후기를 적어 불만을 표시했다. 해당 글에서 경기보조원을 향해 "쓰레기" "캐디들 몰상식에 X판"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 매도했다. 캐디가 빨리 공을 치라며 자신에게 짜증을 냈다는 주장도 했다. SNS에는 해당 골프장 이름을 적시하며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글을 올렸다.
해당 캐디는 홈페이지와 SNS에 게시된 글을 읽고 너무 억울해 정신적 충격이 크다고 털어놨다. 홈페이지에 게시된 후기는 전부 거짓이라고 강조했다. "운동을 하러 오는 어느 고객한테도 그렇지만 척 봐도 배우로 보이는 사람에게 막 대하거나 막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배우 박씨와 캐디 간의 서로 다른 주장에 대해 평가가 가능해진다. 주말 골퍼인 A씨는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앞팀의 늑장 플레이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면서 "특히 SNS에 올릴 사진을 연출하느라 연신 늦게 움직이는 바로 앞팀을 만났다고 하면 그날 운동일정 전체를 망치게 됐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골프장 관계자는 "지연 플레이를 해놓고 오히려 캐디한테 모든 책임을 돌리고 매도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라며 "약자의 처지이다보다 명백하게 불합리한 일을 당하고서도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기 일쑤"라고 털어놨다.
사실 캐디들의 일방적 피해는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전직 국회의장마저 대놓고 성희롱을 할 정도로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다. 그렇다보니 이번 사례처럼 일방적으로 험담을 하거나 매도하는 고객들로 인해 고통 받는 캐디들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는 B씨 역시 "캐디를 대하는 일부 고객들의 몰상식한 태도로 인한 상처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고객이 왕"이라며 그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통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대형 유통점에서 거짓으로 억지를 부리면서 직원들에게 호통을 치는 사례는 CCTV를 통해 부당함이 금세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넓은 공간을 무대로 한 골프장에서 업무에 임하는 캐디들은 CCTV가 제대로 없는 사각지대에서 정치인이나 배우 등 유명인들의 일방적 횡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편, 배우 박씨에게 해당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연락을 시도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으며 문자에도 응하지 않았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