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주기자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30일 오전 경찰과 소방당국, 국과수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이천)=이관주 기자] 38명의 사망자를 낸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이틀째. 화마가 휩쓸고 간 현장은 희생자 유족들의 슬픔과 고통, 분노만이 가득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화재 원인을 밝혀내기 위한 합동감식이 진행됐다. 대형 화재의 원인이 '인재(人災)'임이 속속 드러나면서, 이번에도 어처구니 없는 '안전불감증'이 소중한 가족·이웃들의 목숨을 앗아간 꼴이 됐다.
30일 오전 12시께 경기 이천시 모가면 모가실내체육관. 화재 현장 건너편에 유족들을 위한 임시시설이 마련된 이곳에는 적막만이 흐른 채 희생자 유족들의 눈물로 가득했다.
체육관에 있던 50대 유족은 "동생과 어린 조카를 동시에 잃었다"며 "집안에 보태려 일찍 일터에 나선 착한 아이였는데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됐다"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아들을 잃었다는 한 어머니는 "이제 사진으로밖에 아들을 볼 수 없다니…."라며 흐느꼈다.
유족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은 시공사 건우 대표이사 이모씨의 브리핑에서였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1시 55분께 체육관 단상 위에 올라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 죄송하다"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겠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유족들이 바라던 향후 대책 등은 나오지 않았다. 유족들은 "안전요원도 없이 작업을 시킨거냐", "용접하지 않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 "솔직하게 말해달라"며 화재 책임을 강력히 추궁했고, 이 대표가 별다른 말 없이 단상에서 내려오자 일부 분노한 유족들이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 인근 모가체육공원에 마련된 피해 가족 휴게실에서 30일 오후 시공사 대표가 피해자 가족 항의를 받으며 떠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서둘러 자리를 뜬 이 대표는 곧 혼절했고,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겼졌다. 유족들은 "꾀병"이라며 구급차를 막아서 경찰이 현장 질서 유지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 체육관에서 건우 측 임원과 유족들은 비공개 면담을 진행했다.
통곡과 분노에 찬 체육관 건너편 물류창고 화재 현장에서는 이날 오전 11시께부터 경찰ㆍ소방ㆍ국립과학수사연구원ㆍ한국전기안전공사ㆍ한국가스안전공사ㆍ고용노동부ㆍ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 7개 기관 45명으로 구성된 합동감식반이 투입돼 첫 현장감식에 나섰다. 감식반은 화재가 시작된 지점으로 추정되는 지하 2층부터 감식에 돌입했다. 어디에서 불길이 시작됐는지, 정확한 화원(火原)을 규명하고자 건물 곳곳을 살펴보는 모습이었다.
소방당국은 이번 화재가 유증기가 폭발하면서 벌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증기에 불꽃이 튀면서 폭발이 발생했고, 곧 큰 불길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내부에서 용접ㆍ용단작업 중 발생한 불꽃이 유증기와 만나 폭발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감식반도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전날 오후 발생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친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화재 당시 이곳에서는 9개 업체 78명이 근무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천=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