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정기자
1700년대 후반에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을 만들거나 먼저 사용한 사람이 승자가 됐다. 1970년대에 시작된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와 관련된 표준을 만들고 소프트웨어를 지배한 쪽이 승자가 됐다. 미국이 IT에서 세계 최고가 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점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게 그 예다.
그럼 4차 산업혁명은 누가 승자가 될까? 데이터 패권을 쥐는 쪽이 전세계 경제의 패권을 쥘 가능성이 높다. 스마트폰과 CCTV, 각종 센서를 통해 만들어진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세상을 얼마나 정확히 분석하고 예측해내느냐에 따라 사업의 승패가 갈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데이터라는 기반이 있어야만 사람들이 어떤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고 이 바탕 위에 제품을 만들어야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같은 세계 최상위 기업들이 많은 돈을 들여서 데이터센터를 만들고 서버 증설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데이터는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업이 만들어지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우버는 차량이나 정비소 하나 없이 데이터 서비스 플랫폼만으로 세계 최대의 운송서비스 기업이 됐다. 에어비엔비 역시 호텔이나 콘도 하나 없이 세계 최대의 글로벌 숙박 서비스 기업이 됐다.
데이터 패권은 인공지능(AI)에도 적용된다. 인공지능은 기계가 인간과 같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데이터라는 원천 소재가 있어야 구축이 가능하다. 천문학적인 양의 신뢰할 만한 고품질 데이터를 가지고 반복적인 학습을 시켜야 인공지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데이터산업의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2018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전세계 디지털 경쟁력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의 빅데이터 활용도는 63개국 중 31위밖에 안 된다. 41위인 독일이나 56위인 일본보다 앞서지만 미국, 덴마크,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의 뒤에 있다. 이렇게 뒤처진 이유는 기업이 의사결정에서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8년까지 우리나라 기관과 기업 중 10%만이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는 조사와 일맥상통하는 결과다.
데이터 활용이 부진하다 보니 투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작년 10월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빅데이터를 이용한 스타트업 기업은 9700개 정도가 된다. 총투자금액은 800억달러로 미국이 627억달러로 규모가 가장 크고 중국과 영국이 51억4000만달러와 32억4000만달러로 2, 3위에 올라 있다. 우리 빅데이터 기업 투자액은 2억8000만달러로 세계 13위에 불과하다. 국내 데이터 투자 규모가 선진국과 비교가 안 되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데이터에 대한 기업의 인식 변화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데이터가 기업의 매출이나 이익 증가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데이터 축적 규모가 작고 기술 수준도 낮기 때문이다. 그래도 발전 속도는 빨라 세계적 기업의 경우 관리와 IT부문에서 데이터 활용도가 30%에 달하고 있다. 앞으로 기업의 내부 운영과 관리, 인프라 구축에 데이터의 활용도가 높아질 게 분명한 만큼 우리 기업도 이에 대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기업이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해당 산업에서 정부와 기업의 협력도 가능하다. 작년 5월 우리 정부는 공공과 민간이 협업해 데이터를 분석ㆍ유통하고 혁신 서비스를 발굴하는 데이터 기반의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3년간 1500억원을 투입해 분야별 플랫폼 10개소와 기관별 센터 100개소를 구축할 예정인데, 데이터 산업이 혁신경제의 중심인 만큼 앞으로 더 많은 정부 투자가 이뤄질 걸로 전망된다.
법률 면에서는 오는 7월 시행 예정인 데이터 3법이 빠르게 안착할 수 있도록 시행령과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가명정보의 활용범위를 정하는 게 필요하다. 가명정보는 이름을 '가나다'로 하거나 전화번호를 '010-1234-5678번'으로 정하는 것처럼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게 거짓화하는 걸 말한다. 가명정보는 다른 가명정보와 결합할 경우 진짜 정보를 식별할 수 있어 그동안 시행이 늦춰져 왔다. 최근에 정부가 데이터 결합을 통한 재식별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가 지정한 전문기관만 데이터 결합을 할 수 있도록 해 가명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유럽에 진출한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에 대한 대응도 마무리 지어야 한다. EU는 1998년 5월 일반개인정보보호법을 시행하면서 동등한 수준의 보호체계를 갖춘 국가에게만 데이터 시장 참여를 허용해 줬다. 우리는 개인정보보호 컨트롤타워의 독립성이 확보돼 있지 않아 아직 800억달러에 달하는 유럽 데이터 시장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2015년에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정해 EU의 기준을 충족시켜 데이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우리 기업이 유럽에서 데이터 사업을 시행하려면 사업자가 개별적으로 EU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이용 활성화는 상반된 개념이 아니다.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의 균형점을 찾으면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한 문제다. 이를 위해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개인정보의 범위를 넓게 인정하고 있다. 직접적인 식별 부호가 아니더라도 다른 정보와 결합해 개인의 신원을 유추할 수 있으면 해당 데이터를 개인정보 범주에 넣고 있다. 대신 정보를 다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데이터 3법에서 개인정보의 활용 목적을 '통계 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에 국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업이 상업적 목적을 위해 정보를 어디까지 쓸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데 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금융권이나 일반 기업에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공공정보의 활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대신 데이터를 활용하는 기업은 개인정보보호, 보안사고 등 내부통제 시스템을 고도화해 사람들이 본인의 개인정보가 보호받고 있다는 믿음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계속 발생하게 될 것이다. 데이터시대는 신뢰라는 바탕이 있어야만 만들어질 수 있다.
송화정 기자 pancake@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