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훈기자
[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생존템(생존용 아이템)'이라고 50만원 넘는 롱패딩을 사달라 하는데 학교에서 혹여나 기죽을까봐 사주려고 해요."
서울 동대문구에서 고등학생 자녀를 키우고 있는 류경애(49)씨는 최근 롱패딩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아들의 성화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의 롱패딩을 사주려 했더니, '이런 건 학교에 입고 가면 놀림당해!'라는 답이 돌아왔다. 류 씨는 "유행이 지나면 또 다른 외투를 사달라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2000년대 후반 수십만원대 '다운 패딩'이 '등골브레이커'(값비싼 제품을 사달라고 졸라 부모 등골을 휘게 한다는 의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면, 최근엔 롱패딩이 새로운 등골브레이커로 지목받고 있다. 특히 올 겨울엔 플리스(안에 털을 대거나 솜을 넣은 코트) 제품이 널리 유행하면서 학부모들은 겨울이 다가오는 것이 두렵다는 반응이다.
고가의 롱패딩이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패딩 계급표'까지 돌고 있다. 가격과 브랜드에 따라 '티어(등급)'를 나눈 것이다. 50만원 이상 해외브랜드 제품은 1티어, 아이돌 그룹이 모델이 된 30~50만원대의 국내 브랜드 제품은 2티어 등으로 등급이 매겨진다.
전문가들은 다운패딩ㆍ롱패딩ㆍ플리스 등 고가 제품 유행이 모방심리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최순종 경기대학교 청소년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은 또래집단에서 배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며 "이것이 롱패딩 등의 유행으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패딩 계급론' 등장은 학생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이어서 우려를 낳는다.
실제 고가의 패딩을 두고 학교폭력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 인천 중학생 집단폭행 추락사 사건의 가해 학생이 구속 당시 피해 학생의 패딩점퍼를 입어 논란이 된 바 있다. '노스페이스 패딩'이 한창 유행하던 2012년에는 부산의 중학교 3학년생 5명이 친구들에게 폭행을 가해 120만원 상당의 패딩 네 벌을 빼앗아 입고 다니다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바람직한 소비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만족할 수 있는 것으로 사는 것"이라며 "청소년들이 보다 합리적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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