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위헌]66년만에 대수술…찬반 갈등 불씨 여전

"헌재, 女 자기결정권 보장되지 않으면 태아의 생명권까지 보장되지 않는다 판단"
미혼모 단체 '환영' 입장…음성적 선택들 공공화 희망
"태중 무고한 생명 직접 죽이는 죄…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안 돼"

낙태죄에 대한 위헌판결이 난 11일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위헌을 촉구했던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판결 소식을 들은 뒤 눈무을 닦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정동훈 기자] 헌법재판소가 11일 형법 제269조와 제270조로 규정된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로 결정 내리면서 사실상 위헌으로 판결이 났다. 낙태죄 조항은 이로써 1953년 도입된 이후 66년 만에 개정 수순을 밟게 된다.

반응은 엇갈렸다. 기존 낙태죄 폐지를 찬성해온 측은 "역사적인 진전을 이룬 날"이라고 치켜 세웠지만 폐지를 반대했던 종교계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부당한 입법 요구"라며 성급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낙태죄 위헌소원 대리인단의 류민희 변호사는 "헌재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태아의 생명권까지 보장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국회에서 입법 등 과정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어 류 변호사는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어떤 취지로 입법하라는, 더 이상 여성을 처벌하고 규제함으로써 출산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 판결에 나와있다"며 "여성의 목소리를 듣고 존중하라는게 헌재 판결의 중심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나영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정부는 재생산 권리, 생명권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가족정책, 청소년정책, 이주정책 등 보건의료 정책 전반에서 통합적 정책 연결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낙태죄에 대한 위헌판결이 난 11일 서울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 위헌을 촉구했던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판결 소식을 들은 뒤 환호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한국여성단체연합 관계자는 "낙태죄 폐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헌재 결정 정신 이어받아 낙태죄가 역사적으로 사라지도록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혼모 단체들도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한 미혼 여성들이 고립된 상황 속에서 안전하지 못한 선택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 온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영나 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낙태가 불법화 되다 보니까 모든 결정이 음성적인 부분이 있었다"며 "임신 초기 여성의 고민에 대해 상담하고 도와주는 곳이 없는데 이 영역의 많은 것들이 공식화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낙태죄 헌법 위헌 여부 선고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주재로 열리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오 대표는 "임신과 함께 찾아오는 고민과 어려움을 조금 더 제도화 된 틀에서 공공의 영역에서 지원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도경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낙태를 하더라도 상담을 통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임신 주수에 따라 낙태 가능 여부,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지 출산이나 양육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출산을 선택할 것인지, 또 출산은 하지만 기를 수 없는 이유가 있으면 입양에 대한 연계를 하거나 상담을 통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종교계와 낙태반대운동연합, 프로라이프회 등으로 구성된 낙태법 유지를 바라는 시민연대는 유감을 표했다.

지난 1953년 제정된 이후 66년간 유지돼 온 낙태죄 헌법 위헌 여부 판결을 앞둔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죄폐지반대 국민연합 등 낙태죄폐지반대 관련 단체 관계자가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번 선고는 자신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존재인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고착 시키고 남성에게 부당하게 면제하는 결정"이라며 "낙태는 태중의 무고한 생명을 직접 죽이는 죄이며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행위"라고 밝혔다.

낙태법 유지를 바라는 시민연대는 "'나의 자궁은 나의 것'이라는 외침으로 시작됐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낙태죄 폐지라는 부당한 입법 요구에 이르게 됐다"며 "헌재의 불합치 결정 선고는 낙태죄가 폐지됐을 때 예측되는 수많은 문제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임신의 책임이 있는 남성에게도 책임을 묻는 방법 등을 적용해보는 노력도 하지 않고 법으로 결정하는 것이 능사였냐"며 "앞으로도 남성양육책임 법 제정을 위해 더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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