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목련의 시간/박춘희

도자기를 빚던 손으로 만두를 빚고 조각보를 깁는 여자. 목련이 몰려오기엔 이른 계절 여자들의 수다가 목련 나무에 조롱조롱 열리는 오후. 산그늘 보자기만큼 자리를 넓히면서 겨울 저녁은 온다. 어김없이 귀가하는 주인을 반기는 황구의 시간도 보태고 잎을 버린 나무의 결기로 한 땀 한 땀 어둠을 깁는 목련, 꼭꼭 접힌 주름 층층구름의 마음, 뾰족한 바늘 끝이 가리키는 가지마다 꽃으로 늙어 갈 꽃눈 점점으로 박힌다. 한때 싱싱한 꽃주름을 접어 보던 여자의 손끝, 조각조각 기워지는 애기보만 한 어둠은 씨앗의 눈을 가질까. 늦은 겨울의 끝, 수다에 지친 저녁의 반대쪽 누군가 창을 두드린다. 똑똑똑.

■똑똑똑. 누군가 창문을 두드린다. 누군가 싶어 창문을 열어 보니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고 비만 소슬소슬 내린다. 똑똑똑. 누군가 창문을 두드린다. 혹시나 싶어 창문을 열어 보니 역시나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는데 까치가 푸드득 날아간다. 고놈 참 오래간만이다 싶다. 그런데 또 똑똑똑. 대체 누가 이렇게 객쩍은 장난을 치나 싶어 얼른 창문을 열어 보니, 거기 꽃눈을 단 목련이, 봄비를 가득 안은 목련이, 까치를 그네 태우고선 싱긋 웃고 있다. 아까아까부터 같이 놀자고 졸랐는데 그것도 몰랐냐고 생글생글 웃고 있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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