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극장의 추억/최영철

멀티 상영관만 아는 요즘 관객들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말이야, 우리 땐 헐값에 영화 두 편 보여 주는 동시 상영관이란 게 있었어, 인간적이었지, 한 편으론 섭섭하니 한 편 더, 한 번으로는 안 풀리는 인생이니 앞엣것 지우고 한 번 더금방 떨치고 온 오줌이란 놈이 저도 끼워 달라고 지린내 앞세우고 상영관까지 졸졸 따라 들어왔지, 그놈들 무르팍에 앉히고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거야, 푸르죽죽한 인생들이 흘려야 할 눈물이 저 정도 빗금은 되어야 할 걸수백 번도 넘게 돌아갔을 화면이 시시한지 영화 세상은 자주 시공을 건너뛰었지, 박장대소 환호성 터트리느라 흐르는 눈물 닦느라 스크린은 자꾸 암전되었지, 건달들이 삑삑 휘파람을 불며 어딘가로 달아난 주인공들을 잡아들이면서 영화는 끊어질 듯 이어졌지아까 그만큼 울렸으니 이번엔 배꼽 빠지게 웃겨 보내는 게 어때? 한 번은 뭉클한 멜로였으니 또 한 번은 화끈한 액션으로 버무려 주는 거야, 고달픈 장면일랑 적당히 날려 보내고, 차마 보아 넘기기 힘든 장면에선 잠시 암전되는 게 좋아인생무상도 억울한데 속사포처럼 마구 내달려서야 쓰겠어, 이렇게 살아 봤으니 이번엔 분위기 바꿔 저렇게도 살아 보는 거지, 아깐 착한 눈물샘 지금은 무지막지 불한당, 인생은 역시 오금 저리는 반전이 있어야 살맛 나는가 봐삭막하고 허전한 요즘 인생 막가는 거 딱 한 번으로 끝나는 막장 드라마여서 그럴 거야, 세상에 한 번 만에 되는 게 어디 있겠어, 그래, 안 그래?잠시 쉬었다가 우리 분위기 바꿔 다시 한 번 시작해 볼까
■비련의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이중 스파이는 아니더라도 생각해 보면 당신은 회계사가 될 수도 있었고 기자가 될 수도 있었고 여행 가이드가 될 수도 있었고 쌀집 주인이 될 수도 있었고 축구 선수가 될 수도 있었다. 뿐이겠는가. 당신은 수백 수천 가지의 다른 당신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신은 다만 중년이 되었고 부모가 되었고 여전히 월급쟁이로 살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당신은 오늘 저녁이면 어제 그랬듯이 당신이 그간 땀 흘려 이룬 평온한 저녁을 다시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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