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 파란바지 의인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내가 그때 조금 더 침착했더라면…." 세월호 '파란바지 의인'이라 불렸던 김동수씨의 시간은 2014년 4월16일에 멈춰 있다. 미안함과 후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그를 괴롭힌다. 4.5t 트럭에 화물을 싣고 제주행 배에 오를 때만 해도 인생의 항로가 송두리째 바뀌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탈출하는 자와 갇혀있는 자가 공존하는 시간. 그는 '죽음의 공포'가 가득한 그 공간에 함께 있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평소 마라톤으로 몸을 단련했다고 하지만 구조전문가도 아닌 일반인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 세월호 침몰 119 첫 신고 녹취록 공개.

그는 소방호스를 이용해 사람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구조인원이 늘어날 때마다 체력은 고갈됐다. 김씨는 20명이 넘는 생명을 구한 뒤 구조작업을 멈췄다. 우리가 모두 구조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해경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김씨가 지금도 가장 후회하는 순간이다.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하는데 물러선 것에 대한 미안함이다.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멈춰 있는 동안 김씨는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데 앞장섰지만, 그날 이후 삶이 망가졌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심각한 외상을 보거나 직접 경험한 후 나타나는 불안장애다. 다시 기억하지 않고자 노력하지만 반복적으로 사건이 떠오른다. 세상은 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세상은 그저 김씨를 파란바지 의인으로 기억할 뿐이다. 올해 1월 정부가 김씨에게 수여한 '국민훈장 동백장'이 그의 삶을 보상할 수 있을까. 김씨도, 그의 가족도 다시 4월16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김씨는 다시 자해사건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최근 청와대 앞 자해 소식이 알려진 이후 세상은 그를 주목했다."왜? 청와대 앞에서…." "보상을 더 원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 의혹의 시선이었다. 김씨의 고통을 향한 반응은 차가웠다. 김씨 가족은 다시 외로움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죄인이 된 심정'으로 고통의 시간이 멈추기를 바랄 뿐이다. 김씨 가족이 '세상 속에 표류하는 섬'이 돼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시대의 의인을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이 사회의 빗나간 소비 행태 때문 아닐까.류정민 건설부동산부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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