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2012년 4월부터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은 매월 둘째ㆍ넷째주 일요일이 되면 문을 닫아야 했다. 자정부터 아침 8시까지 영업도 할 수 없었다. 2011년 12월 통과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때문이었다.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은 영역 확장의 기회로 여겼다. "야시장으로 대형마트를 이겨보겠다"는 전통시장 사례를 언론에서 다룰 정도로 화제가 됐다. 정치인들은 "영세상인들이 숨을 쉴 수 있게 됐다"며 환호했다. 문제는 이런 '착한 규제'의 이면에 있다. 유통 산업 영업시간 규제와 출점 규제는 일자리와 직결된다. 복합쇼핑몰 1개가 출점할 때마다 최소 5000개의 일자리가 생겨나고, 대형마트와 백화점 역시 500~1000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반대로 규제가 강화되면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들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지면 소비 역시 위축된다. '소득주도 성장'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스타필드ㆍ아웃렛 같은 복합쇼핑몰도 한 달에 두번씩 의무 휴업 대상 올라 새해 벽두부터 유통업계가 몸살을 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ㆍ여당은 지역상권과 소상공인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무차별 규제를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복합쇼핑몰 패키지 규제법안'(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지난해 9월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 때문에 대형마트에 이어 대규모 복합쇼핑몰도 한 달에 두 번씩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될 위기에 빠졌다. 이 법안은 9일 현재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심사 과정을 거치고 있다. 신사업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도 전에 규제로 인해 흔들리게 될 처지에 놓인 것.의무휴업 규제안을 두고, 업계 안팎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대형점포가 들어서면 지역 상권에 대한 응집효과가 나타나 다른 지역의 고객 유입이 많아진다는 연구 결과(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가 나왔다. 광명 이케아와 파주, 여주 프리미엄아울렛 사례를 통해 광명의 이케아에서 10㎞ 떨어진 거주지 고객의 이용금액은 전체의 95%를 차지했고, 파주프리미엄아울렛과 여주프리미엄아울렛은 각각 30㎞ 이상 떨어진 지역에서 찾아온 고객의 이용금액이 60.11%와 79.7%에 달했다. 무엇보다 광명시는 이케아 개점 이후 신용카드 가맹점들의 매출이 33.8% 증가했다.대형점포 규제 부작용에 대한 연구결과도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의 '신용카드 빅데이터를 활용한 출점규제 및 의무휴업 규제효과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의무휴업 규제는 전체소비를 줄였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전통시장, 개인슈퍼마켓 전부 소비가 감소했다. 2016년 기준 대형마트 소비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도입 전인 2010년보다 6.4% 감소했고, SSM 소비증가율은 -1.3%, 전통시장 -3.3%으로 뒷걸음질 쳤다. 개인슈퍼마켓은 0.1%로 정체된 상황이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몰은 무조건 상권을 죽인다는 단순한 논리로 접근하기 보다는 기업, 주변 소상공인, 소비자가 피해를 최소화하고 편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마트ㆍ백화점이 협력업체 파견직 인건비도 부담해야…고용 감소 역효과
롯데마트 서초점 지하 2층 '스테이크 스테이션'. 팩에 담긴 다양한 부위의 스테이크용 고기를 구매한 뒤 1500원의 조리 비용만 추가하면 채소와 소스를 곁들인 근사한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들이 제조업체 판촉사원의 임금의 절반을 책임져야 한다는 '대규모유통업법' 시행령 개정안도 유통업계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그동안 대형마트에서 상품을 납품하는 업체는 신제품을 홍보하거나 재고를 처리하기 위해 시식코너와 특설매장을 운영하기 위해 직원을 파견했다. 이들은 상품을 진열하는 업무나 시식코너를 운영해 판촉 활동을 벌였다.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대규모 유통업자가 납품업자의 종업원을 파견 받는 경우 파견비용을 양측이 분담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A마트는 납품업체가 1억2800만원의 인건비를 부담해 종업원을 파견, 시식행사 등을 진행토록 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이익이 50대 50이라면 법 개정 후에는 각각 6400만원씩 나눠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정부는 약자를 위한다는 취지해서 이 규제안을 마련했지만 오히려 앞으로 대형마트의 시식코너도 없어지거나 줄어드는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대형마트는 최저임금까지 오른 상황에서 납품업체 종업원 인건비 부담이 커진 만큼 판매 사원을 줄인다는 입장이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극소수 사례를 제외하고 대형마트에서 제조업체에 판촉사원을 보내달라고 강요하는 경우는 없다"며 "각 업체들이 판촉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보내고 있는데, 이들 직원의 임금까지 높은 비율로 부담해야 한다면 파견을 거절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업계 관계자는 "유통업계의 불공정행위를 시정한다는 명분으로 진행되는 규제 다발들은 오히려 고용을 줄이는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랜차이즈 업계 규제로 '갈라파고스화' 위기프랜차이즈 업계도 정부 규제가 강화되면서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등록이 취소된 신규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1073개로 2016년 같은 기간 884개보다 21.3% 늘어났다. 지난해 문을 닫은 기존 가맹본부도 900여곳이 넘는다.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정보제공시스템에 따르면 총 956곳으로 등록 취소율이 전체 등록업체의 16.2%에 달한다. 지난해 초부터 불거진 프랜차이즈 갑질ㆍ통행세 사건 부정적인 이미지가 굳어진 영향이 컸다.프랜차이즈 업계가 크게 반발하는 직간접적인 규제는 두 가지다. 첫번째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는 치킨ㆍ피자ㆍ분식ㆍ커피ㆍ제빵 등 주요 가맹사업 분야 50곳 가맹 본부의 필수물품 상세내역과 마진 규모 공개다. 이에 대해 프랜차이즈 업계는 영업기밀 공개라며 반대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가맹사업거래법' 개정안도 업계엔 부담이다. '가맹점주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가맹점 운영에 어려움이 발생할 경우 가맹본부에게 가맹금 조정에 대한 협의를 요청할 수 있다'게 핵심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은 모두 가맹본사가 져야한다. 박기영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회장은 "가맹거래법 개정안은 유례를 찾기 힘든 규제"라며 "공정하고 바른 가맹사업법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프랜차이즈 산업은 극도로 위축돼 갈라파고스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심나영 기자 sny@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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