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기자
예루살렘의 상징적 건물로 인식되고 있는 '바위의 돔'. 691년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의 지배당시 세워졌다. 이슬람에서 중요한 성지 중 하나다.(사진=위키피디아)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미국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할지 여부를 놓고 전 중동이 뒤흔들리고 있지만, 이스라엘 내부에서 예루살렘은 의심의 여지없이 공식적인 수도다. 국제사회에서는 여전히 예루살렘을 동(東)·서(西)로 분열된 지역으로 보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수도는 '서예루살렘', 동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 영토로 취급하지만 이스라엘에서 예루살렘은 하나의 도시로만 불린다. 이스라엘에서 동·서 예루살렘을 분리해 표기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돼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의 사이클 경주대회인 '지로 디탈리아'(Giro d'Italia) 조직위원회가 내년 5월 개최되는 101차 경주의 첫날 경기가 '서예루살렘'에서 개최된다고 소개하자, 이스라엘 정부가 엄청나게 반발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예루살렘에 동서란 존재하지 않고 통합된 예루살렘만이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이 수도 예루살렘 문제에 대해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심지로서 가지는 상징성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기원전 11세기 경, 성경 속에 등장하는 다윗 왕이 수도로 삼으면서 통합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기능했으며, 특히 예루살렘에 건설됐던 '성전(聖殿)'은 유태교의 종교적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유태인들의 정신적인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유태교의 주요 성지 중 하나인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 모습. 3차 중동전쟁 이전에는 동예루살렘 지역에 속했다가 1967년,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군사적으로 점령한 이후 이스라엘 관할로 들어왔다.(사진=위키피디아)
유태인들 입장에서 예루살렘은 성지이자 민족의 발원지로 해석됐으며, 숱한 외침을 받은 후, 서기 1세기 로마제국의 침략에 유태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진 이후에도 반드시 회복해야하는 민족의 성역으로 여겨졌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부터 예루살렘을 수도로 선포한 이스라엘은 실질 수도기능을 텔아비브가 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식 수도는 예루살렘이며 도시 전역에 대한 관할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예루살렘은 역사적으로는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일종의 행정수도로 건설된 도시였다. 다윗 왕의 등장으로 통합왕국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스라엘은 크게 북부의 유목민 계통인 이스라엘 지역과 남부의 농경문화 계통의 유다지역으로 나눠져 있었다. 유다 출신인 다윗은 두 지역을 군사적으로 통폐합한 뒤, 이스라엘 지역과 유다지역의 경계에 놓여있던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으면서 통합과 화합의 상징으로 도시와 성전을 세웠다.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의 '예루살렘'이란 지명이 붙여진 것도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문제는 아랍인들한테도 예루살렘이 중요한 성지라는데 있다. 오늘날에는 예루살렘의 상징적인 건물이 된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은 이슬람의 주요한 모스크 중 하나로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천사의 인도를 받아 승천했다고 알려진 매우 중요한 성지다. 이슬람 제국이 예루살렘을 638년 점령한 이후 691년 이 건물이 완공되면서 완벽히 성지로 인식됐다. 중동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한 상태지만, 중동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입장에서는 200년간 지속된 십자군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성전(聖戰)을 통해 언젠가는 회복해야한다는 목적의식이 서려있다. 크리스트교 입장에서도 예루살렘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주 무대가 된 성지다. 중세시대부터 근대 초기까지 많은 유럽 지도에서 예루살렘은 지도의 한 가운데 표시됐다. 예루살렘은 '세계의 배꼽'이라 불리며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3대륙을 잇는 세상의 한가운데라 믿어졌다. 200년에 걸친 십자군 원정이 실패로 끝난 이후에도 유럽 각국이 중동정세에 끝없이 개입한 이유 중 하나도 성지 예루살렘 회복에 대한 종교적 염원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렇게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3대 종교와 중동 각국이 첨예하게 대립해왔기 때문에 미국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인정할 경우, 더욱 큰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