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최초, 관행적 업무보고 탈피, 실시간 전직원 의견 제시하는 ‘서초형’ 새해 업무보고회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 "보고는 반성해야 한다. 보고서를 보면 완벽한 듯 보이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할때 있지 않는가”(서초구 9급 공무원)“벽화를 새로 하는 것도 좋지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낡은 상태로 방치된다면 오히려 흉물이 될 수 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다른 사업도 그렇다”(8급 직원)“동주민센터는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해당 동만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운영했으면 한다” (7급 직원) 계급장을 뗀 직원들의 열띤 논쟁이 펼쳐지자 토론장의 열기는 점점 뜨거워졌다.31일 서초구(구청장 조은희)에서 열린 2018년도 ‘새해 업무보고회’ 현장.전 직원이 직급 없이 참여하는 열린 업무보고회는 각본 없이 백지상태에서 진행되는 허심탄회한 토론의 장이었다. 그동안의 업무보고가 부서별로 구청장에게 보고하는 수직적인 방식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파격적이다.이날 오후 2시 구청장부터 9급까지 직원 2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복지·건강분야, 도시·안전 분야, 문화·경제 분야 등 3개 섹션별로 진행된 토론은 국장들의 브리핑으로 시작됐다. 평소 보고를 받는 이와 보고를 하는 이가 바뀌는 순간이다.
조은희 서초구청장 인사말
국장들의 브리핑이 끝나자 원탁에 둘러앉은 9급부터 6급까지 100명의 직원들은 9~10명 단위로 11개 그룹을 이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예산낭비, 생색내기 사업, 관행적 업무 등의 문제점들을 가감 없이 털어 놓았다. 주로 조직의 허리 역할을 하는 30~40대의 젊은 직원(78%)들이다. 해당 국의 부서장들은 언저리에 자리잡아 직원들의 크고 작은 의견들을 경청했다. “주차면적을 공유하기 위해 주차장을 사용하지 않는 면은 파란색 표지판을 만들어서 주민과 공유하게 하고, 이렇게 공유한 사람에게는 인센티브를 주자”“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공원, 어르신에 맞는 공원과 같은 눈높이 공원을 만들자”“주민에게 생활안전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게끔 실전과 같은 교육이 필요하다”자신의 업무영역을 넘나드는 그룹별 직원들의 풋풋한 시각, 소관부서에서 생각지 못한 다양한 의견들은 각 그룹에 배치된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를 통해 무대 대형화면에 즉시 송출됐다. 금연환경 조성, 보육인프라 확충 등 관심도가 높은 사업에 대한 통계도 실시간으로 발표된다. 한 그룹에서 나온 의견을 보고 참다가 얘기한다는 다른 그룹 발표자가 나타나는 등 토론회는 예정시간 3시간을 훌쩍 넘기고 오후 6시가 되서야 끝났다.직원들 의견이 현장에서 공유되는 ‘서초형’ 새해 업무보고회. 500여개 이상 생각들이 쏟아지는 열띤 현장 모습은 구 산하 전 부서에 생중계됐다. 1300여명의 직원 중 참가치 못하는 직원들은 현장 생중계를 통해 온라인으로 실시간 의견을 제시했다. 직원들의 날카로운 지적에 조 구청장은 "다 제 잘못이죠"라며 직원들의 신선한 의견을 적극 받아들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직원들은 이번 업무보고회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나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며 입을 모았다.구가 이처럼 업무보고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은 전 직원이 업무를 공유함으로서 부서간 칸막이를 없애자는 취지다. 그동안 간부들만 공유하는 업무 보고의 무용론과 부서간·직급간 공유 되지 않는 사업은 협업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구는 이번 업무보고회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동안 구는 부서장들이 서로 다른 소속부서로 자리를 바꿔 근무하며 다른 부서 속사정과 어려움을 역지사지로 느껴보는 ‘체인징 데이’, 커피숍에서 자유롭게 팀원들과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모으는 ‘코피스 워크’ 등 유연하고 창의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구성원 상호간 활발한 소통과 협력을 이끌어내 구는 지난 19일 서울시 자치구 최초로 대한민국 지식대상 최우수상(국무총리상)도 수상한 바 있다.조은희 구청장은 “체인징데이, 코피스워크 등 그동안 ‘서초형’ 정책들은 아래에서 위로 변화를 추구한다. 이번 업무보고회도 그런 의미가 있다. 이번 업무보고회를 통해 구정 정책을 전 직원이 공유하고 부서간 칸막이를 없애 주민이 행복한 서초를 만들어 나갈 것” 이라고 말했다. 박종일 기자 drea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회부 박종일 기자 drea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