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문 작가
사랑하는 내 딸 보아라. 오늘 2월의 끝자락, 자그마한 창 너머 넘나드는 햇살이 무척이나 따스하구나. 여기 3월이 오는구나, 봄이 오는구나. 청춘, 빠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절대 늦지도 않은 시간. 너의 휴학 1년은 어떠하였니? 이제 학교로 돌아가서 너도 대학 3학년이 되겠지. 그렇게 쉬어가는 동안 무엇을 보았을까? 아빠는 궁금하단다. 이 세상 어느 구석을 돌아보았을까, 아니면 너 자신의 숨겨진 어느 구석을 찾아 헤매었을까. 그래, 지금 아빠가 궁금한 것은 바로 너의 모습이란다. 그래그래, 바로 너! 어떻게 지냈니? 궁금하구나. 우리가 못 만난 지 벌써 1년도 훌쩍 지나지 않았니? 그날 스무 살 네가 큰 울음 터뜨린 그 날, 엄마와 아빠가 지난 20여년의 혼인 관계를 끝내고 결별하는 과정에서 네가 돌아선 바로 그날 뒤로,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나날들이 지나갔구나. 아빠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 외에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을까. 아!그렇게 세상은 녹음방초 여름을 지나 낙목한천 가을이 가고 겨울이 떠나는구나. 이렇게 다시 새 봄이 오는구나. 사랑하는 딸, 아빠는 너에게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란다. 그렇겠구나,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겠지. 내가 달라진 만큼, 내가 꾸려왔던 관계들이 달라진 만큼. 그 달라진 관계에서 숨 가빠했던 너만큼. 어떻게 지냈니? 그래, 아빠는 짐작한단다. 너의 휴학 1년, 힘들었을 것이다. 혼돈의 시간들이 너를 점철했을 것이다. 그래, 자신의 존재를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바다에, 강에, 저 산들에 분명히도 하늘에. 아빠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아빠의 선택만큼이나 너의 선택 또한 이유가 있기에, 모든 저항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임을 아빠도 충분히 알고 있기에. 나의 사랑하는 딸이 그날 이후 지금까지 아빠에게 고개 돌리고 있는 데에 이유가 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단다. 아니, 적극 성원하고 지지하고 더욱 부추기고자 한단다. 바로 지금 너의 시간이 질풍노도의 시기이고, 새로운 세상은 그렇게 지금 너에게 열리고 있다고. 더욱 맞서라, 고갯짓하고 더욱 떨쳐 나가라. 그래도 한편으로는 걱정한단다. 혹여나 엄마 아빠의 이혼이라는 스스로의 굴레 탓에, 못난 아빠 탓에 더 큰 날갯짓을 해야 할 네가 마냥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힘든 걸음 설령 그것이 폭풍우 속이라 할지라도, 마냥 버거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그래서 더욱 힘주어 말하고자 한단다, 어차피 부모는 징검다리일 뿐이니 디뎌 가라고,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아빠인 나는, 아니 엄마 아빠 모두는 멀리 있지 않고 항상 너의 곁에서 너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저 밤하늘의 별처럼. 이제 중요한 것은 너의 의지, 스스로 세상을 열어나가야 한다고.사랑하는 딸, 고개를 들어 보아라, 마침내 3월이다. 파란 하늘 어디에도 북풍한설의 기운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설령 찬바람이 분다 하여도, 잠시일 것이다. 봄은 그렇게 우리에게 올 것이다. 그래, 그렇다, 필경 너의 봄이고 너의 청춘일 것이다. 기나긴 겨울이 떠난 이 세상에 여기에 바로 너에게 새봄은 이렇게 선뜻 다가오고 있지 않느냐. 최강문 작가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