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열의 體讀]'권력구조 개헌전쟁은 국민기본권 문제다'

박정희 유신헌법·전두환 간선제 등역대정권의 주요 개헌 이슈 되짚으며정치인들 관점의 정부형태 결정 경계꼭두각시 대통령 만든 영남패권주의 정치상대다수대표 선거제도의 문제점 지적결국 권력개편은 약자를 위한 체제로 가야

개헌전쟁(부제:민주주의가 헌법에게 묻다) 표지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130개 조항을 모두 외는 이는 많지 않겠지만 지금처럼 대중, 혹은 시민 다수 사이에서 헌법이 회자되는 건 흔치 않은 광경이다. 정치인들은 저마다의 처지에서 개헌을 논의하고 뭇 사람들의 시선은 헌법재판소를 향해 있다. 국회에서는 30여년 만에 개헌특위가 꾸려졌다. 헌정사상 가장 긴 수명을 누렸다는 지금의 헌법도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국민 대다수는 여기고 있다.과거에도 그랬지만, 개헌 논의가 불거진 밑바탕이나 계기는 아래에서부터지만 진통의 결실은 위에서 낚아채 갔다는 인식이 강하다. 아래는 민중, 위는 정당 혹은 직업정치인을 일컫는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현실에서 드러난 결과만 놓고 보면 말이다.김욱 서남대 교수는 최근 펴낸 '개헌전쟁'이라는 책에서 "정치인들의 관점으로 정부형태가 결정돼서는 절대 안 된다"고 수차례 강조한다. 김 교수는 근래 한국 특유의 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현상과 영남패권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책을 잇따라 펴냈지만, 학교에서 헌법학을 가르치는 등 과거부터 민주주의와 헌법의 관계에 천착해 온 헌법학자다.최근 정치권의 개헌논의가 불붙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둔듯 책의 제목은 다소 자극적이다. 본론에서도 정치인의 발언과 본인의 생각을 일목요연하면서도 거침없이 밝히고 있다. 과거부터 산발적으로 튀어나온 개헌논의는 지난해 각종 의혹제기로 궁지에 몰린 대통령 박근혜가 저이들 딴에는 묘수라고 생각하고 던지면서 불이 붙었다.최순실의 국정농단 의혹이 곳곳에서 불거지면서 한곳에 지나치게 집중된 권력이 문제라는 걸 사람들은 절절히 체감했고 이를 캐치한 잠재 대선후보나 정치인들은 개헌을 우선순위로 두기 시작했다. 저마다 품고 있는 의도는 다르겠지만 정부형태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나아가 제도정치권이 민의(民意)를 효율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폭넓게 고민하게 됐다는 점에서 지금의 개헌을 둘러싼 논의는 바람직하다고 나는 본다. 관건은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력, 자칫 특정 소수가 원하는대로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걸 막기 위한 장치겠지만 말이다.저자가 책을 쓴 의도는 명확하다. 그는 머리말에서 "'박근혜 사태'의 종착점이 결국 개헌논의로 귀결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수십 년 만에 찾아온 혁명적 계기가 고작 대통령 선거를 조금 일찍 앞당기는 것으로 끝난다면 허망한 일"이라고 강조한다. 책 앞쪽에 최근의 정치현실을 전하면서 뒤로 갈수록 과거 개헌 당시의 전후맥락을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스스로 중립적이로 객관적인 논조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나(저자)의 관점이 강하게 반영돼 있을 것"이라고 밝히듯 군데군데 호전적인 문체나 표현도 눈에 띈다.책의 두세번째 장은 우리 개헌사의 주요 이슈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맥락을 설명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얻은 직선제 개헌을 비롯해 전두환의 광주학살 후 간선제 개헌, 박정희가 영구집권을 노린 제7차 유신헌법 개정, 제6차의 3선 허용개헌, 나아가 5ㆍ16쿠데타나 사사오입까지. 3ㆍ15 부정선거 가담자를 처벌하는 데 목적이 있던 제4차 소급입법 개헌을 빼면 모두 핵심은 권력구조를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국민의 기본권과 동떨어진 채 권력구조만을 논의하는 게 문제라고 비판한다.저자가 옳지 않다고 여기는, 개헌이 정치인들만의 권력투쟁 수단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도 일견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처럼 과거 개헌이슈를 되짚어보는 건 권력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의 문제가 국민의 기본권과 직접 연관돼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얼마나 누리며 살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얼마나 많고 구체적인 기본권 문장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정치발전, 다른 말로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투쟁을 통해, 그리고 추상적인 헌법 문구의 구체적 해석투쟁을 통해 발전하는 측면이 거의 절대적"이라고 강조했다.저자가 최근 쓴 다른 책이나 그간 수년 전부터 주장해온 영남패권주의 청산에 대한 주장 역시 곳곳에 묻어난다. 속된 말로 피아구분이 명확해, 누구에게는 거부감이 또 다른 누구는 시원하게 읽히는 부분이다. 저자는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친박진영을 영남지역주의에 기반한 파시즘세력으로, 과거 노무현부터 지금의 문재인까지 이어지는 현재 야당 내 주류세력에 대해서는 '적대적 공생의 영남패권주의'로 정의한다.문재인이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반기문의 사퇴 후에도 여러 대선주자들이 난립하면서 여전히 논의되는 제3지대론에 대한 저자의 기대감도 엿볼 수 있다. 최근 최순실 사태를 빗대 민주화된 사회에서도 '꼭두각시 대통령'같은 봉건시대에서나 볼 법한 작금의 현상 역시 영남패권주의에 기댄 정치구도 때문이며, 영남패권주의를 가능케하는 건 과반수 득표에 관계없이 상대보다 한표라도 더 많이 받은 후보가 당선되는 상대다수대표 대통령ㆍ국회의원 선거제도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핵심은 제도를 바꾸는 것이며 그중에서도 독일식 내각제 개헌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 내각제만이 오직 유일하게, 지역이든 여성이든 노동자든 실업자든, 그 누구든 자신들의 의지에 따라 표를 결집하고 경우에 따라 연립의 형태로 정권에 참여해 소수자, 약자의 지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며 "정략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말했다. 현 제도에서는 배제될 수밖에 없는 소수세력이 정당한 권리를 갖고, 누군가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지 않고 타협에 의한 정치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선거제와 국정운영체제를 바꿔야한다는 논리다.저자의 시선을 공유한다면 개헌은 지금이 적기다. 일부에선 내년 지방선거, 혹은 다음 국회의원 선거 때가 효율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런 식으로 혁명적 분위기가 지나간 후 개헌이 이뤄진 사례가 없다. 올해 선출되는 대통령이 특정 시한을 정해 헌법개정 시점을 정하는 헌법부칙을 개헌하는 게 필요하다는 '조언'은 대선주자는 물론 유권자들도 새겨들은 만한 팁이다.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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