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대기중인 그녀와, 대권후보 반기문과 손잡는 그녀…서울대 82, 84학번의 경쟁과 굴절의 질긴 역정
16대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영입으로 나란히 정계에 입문한 두 여성정치인 나경원 의원과 조윤선 장관은 빼어난 미모와 우수한 학벌, 그리고 탄탄한 배경까지 겹쳐 정계의 프린세스로 통했지만, 박근혜 대통령 임기 말에 접어들며 대비되는 행보를 펼쳐 또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갖고 싶다는 욕망과 그것을 갖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는 체념이 하나가 되어, 가슴 아플 정도는 아니지만 희미하고 달콤한 어쩐지 애상적 정서가 생긴다. 여자는 그런 감정을 즐긴다. 그것과는 달리 여자가 실제로 갖고자 하는 물건은 그 여자에게 강렬한 고통을 안겨준다. 여자는 그 물건 때문에 안절부절못할 만큼 괴로워한다.”- 모리 오가이, <기러기> 중에서정치를 두고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얻을 것인가”의 문제라 해석한 헤럴드 라즈웰의 지적은 명쾌하다. 크게는 국민, 작게는 지역 주민의 살갗에 닿는 정책과 예산을 얼마나 많이 끌어오느냐는 곧 정치인의 역량으로 귀결되며, 다음 선거의 당락을 가르는 주요한 가늠자가 되지만, 살뜰히 지역주민을 챙겨온 정치인 또한 정당의 전략이라는 판 위의 말(馬)일 뿐. 이들을 제치고 강력한 스펙과 대중적 이미지 파워를 등에 업고 매해 등판하는 정략적 정치 신인들은 승리를 위한 상징적 존재로 무수히 명멸해왔다. 그중 국회 여성의원 비율 15.7%의 절망적 정치판도에서 정치입문 15년 차 동기로 국내 여성 정치인 중 선두 주자로 손꼽히는 나경원 의원과 조윤선 장관의 등장과 경쟁은 화려한 배경과 탄탄한 삶의 궤적, 그리고 빼어난 미모까지 더해져 한쪽의 우세를 점치기 힘들만큼 접전 양상을 펼쳐왔고, 정권 말 최순실 게이트와 차기 대선을 놓고 또 한 번 엇갈린 행보를 보이고 있는 두 사람의 정치역정은 꽃길로 비춰진 빙판 위 보보경심(步步驚心)으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나경원 의원이 서울대 법학과 재학 당시 학내 서클인 '국제법학회' 동기들과 간 MT에서 찍은 사진. 30여년 전 사진임에도 굴욕없이 빛나는 미모로 인터넷 상에 자주 등장하는 사진이다.
만년 1등 ‘공부의 신’과 예술을 사랑한 ‘외교학도’ ‘미녀 정치인’이라는 (다소 치우친)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나경원 의원과 조윤선 장관은 서울대 재학시절 ‘미녀 3인방’으로 손꼽히며 동기 선후배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통했다. 나경원 의원이 82학번 법학과, 조윤선 장관은 84학번 외교학과에 입학해 미모 못지않은 성적으로도 유명세를 치렀다고. 예비역 공군 소령의 장녀로 태어난 나경원 의원은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중·고교 1등을 놓치지 않던 수재로, 자서전을 통해 스스로도 ‘공신’이었다고 쑥스럽게 털어놓은 바 있다. 성적은 완벽했지만 성격은 뜻밖의 ‘어리바리’형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어수룩하고, 뭘 잘 모르는 아이’로 통한 그녀는 오로지 공부 하나에 매진해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대학에 가보니 공부 잘하는 천재들이 죄다 모여있었고, (서울대 82학번엔 원희룡 제주지사, 강석훈 청와대 경제수석, 이혜훈 의원, 조국 교수, 김난도 교수 등이 있었다) 목표로 한 사법고시엔 번번이 떨어져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거듭한 끝에 서른이 되던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 연수원 10위권 내 성적을 줄곧 유지하며 판사에 임용돼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조윤선 장관의 대학시절 사진. 조 장관과 사법연수원 동기였던 강용석 변호사는 과거 방송프로그램에서 그녀의 뛰어난 외모에 대해 '모태미녀'라고 발언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사업가 부친과 약사 어머니 밑에서 자유분방한 유년기를 보낸 조윤선 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시절 자신이 약간 뒤처지는 학생이었음을 고백한 바 있다. 매일 숙제를 봐주는 어머니로부터 ‘너는 남보다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는 독려를 받고 이후 공부에 매진해 서울대 외교학과에 입학, 졸업 후 사회로 진출한 동기들이 성장을 거듭할 땐 스스로 백수를 자처하며 사법시험 준비에 매달리다 대인기피증을 앓는 중에도 부친의 ‘한 번만 더 해라’는 말에 용기를 얻어 6년 만에 합격의 기쁨을 안겼다. 법학도의 꿈을 꾸게 된 배경 중 하나로 그녀는 1984년 방영돼 인기를 얻은 미국드라마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에서 주인공 하트가 <하버드 로 리뷰 Harvard Law Review> 편집장으로 임명되며 듣는 ‘하트는 법에서 예술을 보는 사람’이란 대사를 마음에 담고 법과 예술에 심취하게 됐음을 밝히기도 했다.
16대 대통령선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특별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나경원 의원은 당시 판사출신 여성보좌관으로 언론의 조명을 받았으나 임명 후 다음날부터 할 일이 없었다며 호된 신고식을 치뤘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판사는 판례를 통해 개인의 삶을 바꿀 수 있지만 정치인은 사회를 바꿀 수 있어요”나경원 의원이 판사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2002년, 16대 대선 기간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여성특보로 정치에 입문한 그녀의 ‘특별보좌관’이란 직함은 번쩍였고 기자들에 둘러싸여 회견과 촬영을 마치고 단숨에 주목받는 인사가 되나 했지만 그 뿐이었다. 나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둘째 날부터 아무 할 일이 없었다. 부르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방도 없었다”고 그 시절을 떠올렸다. 학교와 법조계 대 선배였던 이 후보의 요청을 거절하기도 어려웠고, 법조계 선배이자 최초 여성 부장 판사를 역임한 이영애 전 의원의 권유에 과감히 법복을 벗었지만 할 일이 없는 대선 캠프에서 적잖이 마음고생 하던 그녀는 16대 대선 패배 후 변호사로 지내다 2년 뒤인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개인의 삶이 아닌 사회를 바꾸는 삶을 선택한 이유로 다운증후군을 앓는 딸을 키우며 사립초등학교 입학을 일언지하에 거절당한 사건을 꼽은 나 의원은 이후 의정활동을 통해 장애인 처우 개선 및 사회복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2011년 서울시장 출마 당시 중증 장애 청소년을 알몸상태로 목욕시키는 봉사 사진을 언론에 공개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는가 하면, 딸인 김 양이 2012년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입시에서 과도한 특혜를 누렸다는 의혹이 제기돼 정치적 입지에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16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는 나경원 의원에 앞서 조윤선 장관을 먼저 대변인으로 선임했다. 부드러운 이미지의 대변인을 통해 다소 딱딱하고 고지식하게 비춰지는 이미지를 바꾸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됐다.
“제가 원하는 건 권력이 아니라 좋은 영향력이에요” 조윤선 장관은 사법시험 합격 후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외국인 투자 및 지적재산권 분야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선대위 공동대변인으로 발탁되며 정계에 진출했다. ‘정치 동기’ 나경원 의원이 화제성에 반해 미미한 활동으로 고심할 때 조 장관은 보수정당 사상 첫 여성 대변인 기록을 남기며 한발 앞서갔으나, 대선 패배 후엔 다시 친정인 김&장에서 숨을 고르다 2007년 한국씨티은행 부행장을 거쳐 2008년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며 본격적인 정치 이력을 시작했다.총선 직전 원외 대변인으로 영입된 후 당 대표가 3명이 바뀌는 동안에도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당 최장수 대변인 기록(2008년 3월 17일~2010년 2월 4일, 총 690일)을 세운 그녀는 계파색이 옅어 주류에서 벗어난 의정활동을 펼쳤으나 특유의 친화력과 문화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여야 정치인들과 두루 두터운 관계를 유지했다. 2012, 2016년 잇달아 당내 공천경쟁에서 각각 홍사덕, 이혜훈 의원에게 밀려 지역구에서 ‘실전’ 감각을 익힐 기회를 놓쳤지만, 당시 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에게 중용돼 핵심 측근으로 급부상했고 대통령 당선 후엔 여성가족부 장관, 청와대 정무수석을 거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임명되며 ‘박근혜 정부의 신데렐라’로 불린 한편 ‘전문성 없는 회전문 인사’라는 거센 비판에 휩싸였다. 이후 최순실 게이트 관련 정무수석 시절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함께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를 줄곧 부인해오다 최순실 국정농단 7차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의 집요하고 치밀한 추궁에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시인했고, 이에 지난 18일 특검이 조 장관에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함에 따라 현직 장관으로서 좋은 영향력이 아닌 불명예 기록을 남기게 됐다.
나경원 의원은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대변인을 맡아 BBK 관련 의혹 제기에 이 후보를 의심해본 일 없으며, "BBK 설립했다"는 이 후보의 발언에는 주어인 '내가'가 빠져있어 사실상 설립자로 보기 어렵다고 해명해 여론의 빈축을 샀다. 사진 = '고뉴스 TV' 화면 캡쳐
이명박의 입, 주어 경원17대 국회 입성 후 당 대변인으로 활동한 나경원 의원은 2007년 17대 대선 기간 중엔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대변인으로 나서며 ‘이명박의 입’이라 불렸다. 이 후보의 BBK 주가조작 사건이 쟁점이 되자 과거 그의 발언 중 “BBK 설립했다”에서 ‘내가’라는 주어가 없으므로 본인이 설립한 것이라 보기 힘들다는 발언을 해 ‘주어 경원’이란 멸칭을 얻은 바 있으며, 이명박 대통령 당선 후인 2008년엔 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아방궁이라 표현해 야권의 거센 비난을 받고 이후 서울시장 후보 인터뷰에서 당시 표현이 지나쳤음을 사과하기도 했다. 18대 총선에선 서울 중구에 출마해 앵커 출신 신은경을 꺾고 당선됐고, 2011년 무상급식 논란으로 오세훈 시장 사퇴에 따라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박원순 후보에 패해 정치인생에 일대 시련을 맞았으나 2014년 정몽준 의원의 서울시장 출마로 공석이 된 서울 동작구 을 보궐선거에 출마, 당선되며 여의도로 복귀해 20대 총선까지 당내 여성 중진의원으로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조윤선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선대위 대변인을 맡은 인연으로 대선 캠프를 거쳐 대통령 인수위에서도 대변인으로 선임하며 각별한 신뢰를 얻어 이후 여성부 장관, 청와대 정무수석, 문체부 장관까지 내각의 요직을 두루 역임한다. 사진 = 연합뉴스
박근혜의 여자, 신데렐라19대 총선 공천에 탈락했던 조윤선 장관은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의 요청으로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아 박 대통령과 긴밀한 인연을 맺었고, 이후 18대 대선 중앙선대위 대변인에 이어 대통령직 인수위에서도 대변인으로 임명되며 새로운 친박 핵심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박근혜 정부 초대 여성부 장관을 거쳐 청와대 정무수석에 발탁됐을 땐 화려한 스펙과 함께 정치적 경험 부족으로 세간의 화제가 됐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문 당시 부인 펑리위안을 맞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하며 ‘박근혜의 여자’로 불렸으나 지난해 11월 국회 교문위 회의에서 “정무수석 재임 11개월 동안 대통령과 전화통화만 했을 뿐 독대는 없었다”고 밝혀 ‘역대급 무능한 정무수석’이란 비난을 받았다. 그럼에도 지난해 8월 개각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내정되며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확인시켰고, 정무수석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가담했냐는 일각의 의혹 제기에 줄곧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으나 지난 7차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가 있냐는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의 18회 반복된 추궁 끝에 블랙리스트 존재에 대해 시인함과 동시에 “정치, 이념적인 문제로 특정 예술인들을 지원에서 배제했던 사례가 있었다”고 답해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됨과 동시에 현직 장관으로 구속 위기를 맞았다.
2008년 나경원 대변인에 이어 후임 대변인에 임명된 조윤선 당시 한국씨티은행 부행장의 모습, 이회창 대선캠프를 통해 나란히 정계에 입문한 두 정치동기는 이명박 - 박근혜 정부를 지나오면서 극명하게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12일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권 광폭 행보에 연일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당초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신당행이 점쳐졌던 나경원 의원이 탈당을 보류하고 반 전 총장의 대선 행보를 돕겠다고 밝혀 조 장관이 주춤하고 있는 사이 새로운 대권 주자의 최측근으로 자리매김 중인 상황. 한편 조 장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혐의를 받아 ‘블랙리스트 사건의 몸통’이란 지적과 함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진행 중에 있다. 비박계로 분류됐던 나경원 의원은 지난 2014년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내정된 개각 당시 강력한 정무수석 후보로 거론된 바 있다. 그녀가 재보궐 선거가 아닌 청와대행을 선택했다면, 그에 조 장관이 여가부 장관직을 쭉 수행했다면 오늘 반기문 전 사무총장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곁에서 빛과 그림자로 극단적 대비를 연출하는 두 정치 동기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한 것임을 알기에, 모리 오가이가 그렸던 여성의 간절한 소유욕에 권력을 밀어 넣고, 서로 다른 행마를 보이고 있는 두 여인의 복잡다단한 심경을 설핏 짐작해볼 뿐이다.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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