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  점심시간/신해욱

  카레를 먹었다.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나는 조용한 음식이 좋은 걸까. 사슴은 카레가 맛있을까.   *  창밖을 보았다.  도로에서 죽은 사람의 하얀 자세가 오랫동안 차에 밟히고 또 오랫동안 비를 맞는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정지했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숨을 쉬고 만다.   *  어제의 물을 마셨다.  비에 젖는 방법이 기억나지 않았다. 
 참 조용한 시다. 조용하고 아득한 시다. "점심시간"에 "카레를 먹었다." 카레는 조용하고 막막한 음식이다. 갠지스 강가가 내려다보이는 어느 골목에 한 노인이 앉아 오른손으로 카레를 먹는 장면이 전생처럼 떠오른다. 그의 눈망울이 사슴처럼 맑다는 생각이 든다. 카레를 먹으면서 "창밖을 보았다." 거기에 강 대신 도로가 흐르고 있다. 그 도로 위에 생전 한번 만난 적 없는 어떤 한 "죽은 사람"이 다만 "하얀 자세"로 표시되어 있다. "오랫동안 차에 밟히고/또 오랫동안 비를 맞는다." 한 사람의 죽음이, 그 흔적이 그렇게 지워져 가고 있다. 나 또한 그럴 것이다. 아니 어쩌면 실은 내가 저기에 누워 있는 건지도.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하루하루 꼭 그만큼씩 죽어 가고 있는 셈이다. 차에 밝히면서 비를 맞으면서. 생 속에 죽음이 깃들어 있다. 문득 숨이 멎는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타이밍을 놓치고/숨을 쉬고 만다." 어제도 그랬듯 오늘도 물을 마시지만 그 물은 이미 죽음을 건넌 뒤에 마시는 물이다. "비에 젖는 방법이/기억나지 않았다." 저 멈추지 않는 빗줄기처럼, 생(生)이 통째로 닥쳐온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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