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상도 기자] "지금도 어렵고 외롭다. 지난 8월 전당대회 직후 129명의 새누리당 의원 중 (나를 제외한) 128명이 기꺼이 나를 당 대표라고 부를까 걱정했다." 여당 안팎에서 거센 퇴진 압박을 받는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외로운 전쟁을 벌이고 있다. "현명한 판단을 해달라"는 주변 요구에도 귀를 틀어막은 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집권여당에 2개의 지도부가 들어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보인다. / 사진=연합뉴스
◆사상 초유의 집권여당 '한 지붕 두 살림' 임박= 9일 정치권에 따르면 "무책임하게 지금 그만둘 수 없다"는 이 대표와 친박(친박근혜) 지도부의 거취 표명 여부에 따라 여당은 분당이란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다. 전날 기자들과 대면한 이 대표는 "태풍이 불 때 배에서 뛰어내리면 다 죽는다"며 사퇴 불가 의사를 재천명했다. "어느 누가 노를 함께 저으며 풍랑을 헤쳐나가려 하겠느냐"며 사퇴를 종용한 정진석 원내대표의 충고에 대한 답이었다. 이 대표는 사실상 정치 인생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각오도 내비쳤다. "예전부터 선산을 지키는 '낙락장송'이 되고 싶었다. 개인적으론 지금 숨고 달아나고 싶은 사람이 바로 저다. 대권 꿈이나 야심도 없다. 여기서 몇 개월 더 버틴다고 뭐가 달라지겠나"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어 "당도 책임대표가 필요하다. 지금 단박에 한두 가지가 바뀐다고 지지율이 50%로 올라가진 않는다"고 항변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그의 지역구인 호남지역의 박근혜정부 지지율이 0%였다. 호남에서 다시 국회의원에 도전한다는 꿈을 사실상 접은 셈이다 이 같은 눈물겨운 전쟁의 구심점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의리로 해석된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뒤 수많은 친박 실세들이 뒤로 숨었다. 반면 이 대표는 박 대통령과 친박의 방어막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총알받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변의 자조 섞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201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윤회 문건'에서 이 대표는 청와대 보좌진들로부터 '근본 없는 놈'으로 묘사됐다. 의외의 선택인 것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지난 8일 국회 당 대표실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朴대통령 향한 의리…정치인생 건 듯= 하지만 대세는 거스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의혹을 규명하고, 사태를 수습한 뒤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맞서지만 국민들의 귀에는 호소가 들리지 않는다. 정치권에선 국란의 주범이 된 여당의 재편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벌써부터 비박(비박근혜)의 탈당과 제3지대 보수세력이 결합하는 '가교정당론'이 힘을 얻는다. 이미 보수정당의 균열은 시작됐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비박 강석호 의원은 이날 YTN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젠 수습이란 것도 의미가 없다"며 "이 대표나 지도부가 어떤 명분도 없는 만큼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서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건강한 보수의 의견을 담아낼 당내 (비주류의) 새로운 지도체제를 구성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새누리당의 비박 중진의원과 초재선 의원들도 이날 모임을 갖고 당 해체와 재출범을 결의했다. 이를 위해 현재의 친박 지도부 사퇴에 이어 당 해체 수순을 밟기로 했다. 기존 지도부를 대체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도 어느 정도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13일에는 비박 여당 의원들과 소속 시도지사, 원외 위원장 등이 참여하는 '비상시국회의'도 개최한다. 이들은 그동안 3선 이상 의원 모임과 초재선 의원 모임을 따로 진행해 왔지만 이날 한자리에 모여 처음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날 회동을 계기로 본격적인 단체행동에 돌입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 안팎에선 이를 2012년 한나라당 해체와 새누리당 출범에 준하는 '리빌딩' 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분당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를 비롯한 친박 지도부가 이대로 버틸 경우, '한지붕 두 살림'은 물론 집권여당 분당까지도 가능한 상황이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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