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업계 특성상 살얼음판 경쟁…건강 적신호도 무시
[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중국에서 촉망 받던 한 기업인이 44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뒤 현지 정보기술(IT)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IT 업계에서 '오로지 성공하기 위해 장시간 일하는 게 과연 의미 있는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모바일 건강 애플리케이션 제조업체 춘위닥터(春雨醫生)의 장루이(張銳)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5일(현지시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 원인이 과로라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업계의 일부 인사는 피 말리는 경쟁 속에서 그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 사망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중국 최대 비트코인 교역소 훠비(火幣)의 리린(李林) 창업자는 장 CEO의 죽음과 관련해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微信ㆍ위챗)'에서 "신생 기업 창업자가 겪는 스트레스와 외로움을 일반인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며 "특히 진입 장벽이 낮고 경쟁이 치열한 인터넷 부문에서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다"고 썼다.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阿里巴巴)그룹은 2014년 기업공개(IPO)로 250억달러(약 28조700억원)를 끌어 모았다. 이에 자극 받은 중국의 신세대 기업인들은 자본과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도 불사했다.올해 2분기 중국에서는 하루 1.2개꼴로 인터넷 관련 업체가 탄생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도 치열한 경쟁과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다. 중국의 경우 인터넷 산업이 상대적으로 초기 단계에 있는데다 규제와 자금조달은 유동적이어서 현지 기업인이 마주해야 할 독특한 과제가 많다.미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소재 벤처펀드 500스타트업스의 데이브 매클루어 파트너는 최근 블룸버그통신과 가진 전화통화에서 "중국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경영진이 받는 스트레스는 실리콘밸리의 기업인들보다 훨씬 크다"며 "그러나 중국의 스타트업 기업인들은 건강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매클루어 파트너로부터 투자 받은 기업인은 세계적으로 3000명이 넘는다. 이들 가운데 지금까지 6명이 사망했다. 그 중 한 명은 자살했다.
장루이 춘위닥터 CEO(사진=춘위닥터).
장 CEO는 춘위닥터가 매우 중요한 분수령을 맞이한 시점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춘위닥터는 지난 6월 12억위안(약 2000억원)을 조달해 기업가치가 10억달러에 이르면서 IPO까지 고려 중이었다. 10억달러라면 미국에서 '유니콘(unicornㆍ기업가치가 10억달러를 웃도는 비상장 신생 기업)'으로 불리는 기업이다.춘위닥터도 출범 초기 수개월 동안 이른바 '996공작제(工作制)'를 필요로 했다. 996공작제란 1주 6일간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일하는 것을 말한다. 춘위닥터는 오래 전 996공작제로부터 벗어났다.베이징(北京)에서 신문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장 CEO는 인터넷 포털 넷이즈(網易)의 부편집장으로도 일한 바 있다. 그가 춘위닥터를 창업한 것은 2011년이다. 춘위닥터는 온라인으로 환자와 의사를 연결해준다. 환자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병원에서 진료 받기까지 오랫동안 기다릴 필요가 없다.지난 수년 동안 중국의 기업인들은 일과 삶 사이에 균형을 맞추기가 매우 어렵다고 토로해왔다. IT 업계의 베테랑 리카이푸(李開復)는 암에서 회복한 뒤 지난해 책 한 권을 발간했다. 여기서 그는 수십년 동안 하루 15시간 일하며 잘 나가던 중 암이 생긴 것은 '몸의 항의'였다고 적었다.애플ㆍ마이크로소프트(MS)를 거친 그는 2005~2009년 구글차이나의 부사장으로 일했다. 지금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시노베이션벤처스(創新工場)를 이끌고 있다.레노버 창업자 류촨즈(柳傳志) 회장의 딸인 류칭(柳靑)은 현지 최대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 디디추싱(滴滴出行)의 사장이다. 류 사장은 직원들에게 날마다 운동하며 건강관리에 신경 써줄 것을 당부해왔다.지난해 10월 의학전문지 랜싯에 60만명이 넘는 개인의 건강 데이터를 분석한 보고서가 게재됐다. 이에 따르면 1주 55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은 표준인 1주 35~40시간 일하는 이들보다 뇌졸중 및 심혈관계 질환으로 고통 받을 확률이 높게 나타났다.미 캘리포니아주 팰러앨토 소재 벤처캐피털 업체 노키아그로스파트너스의 폴 애슬 파트너는 "기업 수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기업 승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춘위닥터는 현재 리광후이(李光輝) 공동 창업자가 순조롭게 이끌고 있다.지식 콘텐츠 포털 요우미(優米)의 창업자인 왕리펀(王利芬)은 웨이보(微博) 마이크로블로그에서 장 CEO의 죽음을 애도하며 "스타트업 경영자들의 경우 장시간 일하며 동업자ㆍ가족과 불화하고 자금조달 문제로 큰 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한다"고 적었다.이들은 기업인이라는 그럴싸한 명패 아래 포럼 단상에 올라 스포트라이트까지 받아가며 주변의 부러움을 산다. 그러나 왕 창업자는 "이들의 마음에 평화가 깃드는 순간은 없다"고 말했다. 이진수 기자 commu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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