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읽다]뇌전증보다 편견이 더 무서운 病

약물로 조절하면 일상생활 충분히 가능

▲뇌전증에 대한 편견부터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뇌전증은 여러 가지 질환 중 하나입니다.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질환을 치료하는데 포커스를 맞춰야 합니다. 편견과 선입견은 금물입니다."지난달 31일 있었던 해운대 교차로 교통사고를 두고 뇌전증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이번 사고는 뇌전증 환자가 약을 복용하지 않아 의식을 잃었고 그에 따라 일어난 참극이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뇌전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뇌전증 환자에 대한 선입견'이 불거졌습니다. 마치 뇌전증 환자 모두 교통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잠재적 사고자로 낙인찍혀 버린 것이죠. 홍승봉 대한뇌전증학회장(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은 "부산 해운대에서 운전 사고를 낸 환자의 경우 당뇨, 고혈압 등 여러 가지 지병이 있었는데 교통사고의 원인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당뇨약에 의한 저혈당 증상도 의식 소실과 이상행동, 뇌파의 이상을 보여 사실 뇌전증 발작과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 순간적으로 혈압이 올라가는 고혈압성뇌증(hypertensive encephalopathy)도 기억장애, 정신혼란, 졸음증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운전 중 발생했는지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뇌전증, 불치병 아니다=이번 사고로 뇌전증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뇌전증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이에 대한 치료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뇌전증은 불치의 병이 아닙니다. 10명 중 7명(70%)의 환자는 약물로 잘 조절이 됩니다. 자동차 운전 등의 일상생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번 사고 때문에 전체 뇌전증 환자에 대한 '운전 불가' 등의 주장은 지나친 해석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습니다. 뇌전증은 지금 건강한 사람도 뇌질환에 걸리거나 뇌손상을 받으면 앓을 수 있는 질환입니다. 즉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환이라는 것이죠.세계보건기구(WHO)의 2004년 발표 자료를 보면 뇌전증은 전 세계적으로 약 6500만 명이 앓고 있는 흔한 질환입니다. 뇌전증의 유병률은 인구 1000명당 2.2명에서 41명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대한뇌전증학회의 역학조사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 유병 환자 수는 2012년 기준 19만2254명으로 인구 1000명당 4명으로 추정됩니다. 뇌전증의 유병률은 실제 환자 수보다 적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환자 자신이나 보호자들이 증상을 인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또 여전히 부정적 사회 인식이나 차별 때문에 환자 자신과 가족들이 뇌전증을 앓고 있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거나 의료제도 이용을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약 30%의 뇌전증 환자들은 약물 치료로 잘 조절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학의 발전으로 약물에 반응을 하지 않는 약물 난치성 중증 뇌전증 환자들도 뇌전증 수술을 통해 약 85%에서 치료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뇌전증 수술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합니다. ◆뇌전증, 교통사고위험 낮다=일본과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의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뇌전증 환자의 교통사고의 상대적 위험도는 70세 이상의 고령군 또는 20대 젊은 연령대 운전자들에 비해 훨씬 낮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벨기에 교통국의 웹사이트를 보면 뇌전증으로 인한 교통사고의 최대 상대위험도(relative risk)는 1.8이었습니다. 이 위험도는 25세 미만의 젊은 나이의 상대위험도 7.0과 비교했을 때 많이 낮은 수준입니다. 25세 미만의 젊은 여자 3.2와 76세 이상 노인 3.1 보다도 훨씬 낮습니다. 1년 동안 발작이 없는 뇌전증 환자의 교통사고의 상대적 위험도는 60세 이상 정상인들보다도 낮았습니다. 약물 치료로 증상이 잘 조절되는 환자들은 정상인과 똑같이 일하고 잘 생활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홍승봉 회장은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도 뇌전증 수술을 받으면 대부분 발작 증상이 조절돼 정상생활을 할 수 있다"며 "이번 사고로 뇌전증 환자들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서는 절대로 안 되며 사실과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뇌전증, 안전교육 필요=이번 사고로 뇌전증 환자에게 운전면허 자체를 금지해야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는 지나친 주장이라는 것이 대한뇌전증학회의 입장입니다. 대한뇌전증학회는 기존에 면허를 취득한 뇌전증 환자들이 적성검사를 할 때 별도로 자동차 운전을 포함한 안전교육을 철저하게 받을 수 있도록 자료개발과 교육 강화 방안을 경찰청 교통국과 협의해 추진할 예정입니다. 뇌전증 화자들의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뇌전증을 진료하는 의사들에게 철저한 안전교육을 포함한 진료지침을 만들어 배포할 계획입니다. 뇌전증 환자들의 기본권 보장도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운전면허 취득기준에서 뇌전증은 결격 사유로 돼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미국의 운전면허 취득 기준은 주마다 다른데 대부분 무증상 기간의 규정 없이 의사소견서에 따르거나 3개월, 6개월 또는 1년의 최소 무증상 기간 후에는 운전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발작이 발생한 경우에는 운전면허를 일시적으로 정지시키고 발작이 수개월 이상 잘 조절될 때는 다시 운전을 할 수 있습니다. 홍승봉 회장은 "뇌전증의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과거부터 있었던 사회적인 낙인을 없애기 위해 정부와 국민의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를 호소한다"며 "대한뇌전증학회는 이를 위해 대국민 홍보와 전국 순회 뇌전증의 날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강지혜 영도병원 신경과 과장은 "대부분의 뇌전증은 약물로 충분히 치료와 조절이 가능하며 70% 이상은 약물치료로 일상생활을 하는데 큰 지장이 없다"며 "(사고를 낸)경우처럼 정해진 약물 치료를 지키지 않거나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식과 선입견 때문에 치료시기를 놓치게 되면 오히려 자기 자신의 건강은 물론 타인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증상이 있으면 신속한 진단을 통해 적절한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hr/>◆뇌전증 "전 연령대에서 발병, 약물치료 가능 "전증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고 연령에 따라 나타나는 원인도 다르다. 분만손상, 중추신경계 발달장애나 유전적 성향은 소아와 청소년기 뇌전증의 흔한 원인이다. 중년 이후에는 뇌졸중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고령에서는 퇴행성 신경질환이 원인으로 꼽힌다. 전 연령 군에서 뇌 외상, 중추신경계 감염과 종양이 뇌전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환자 스스로 발작을 느낄 수 있는데 복합부분발작 등의 일부 발작은 환자가 전혀 발작을 했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발작을 관찰한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뇌전증의 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뇌파 검사와 뇌영상검사 등의 검사를 이용할 수 있다. 이 같은 검사를 하더라도 뇌의 이상을 찾을 수 없는 특발성 뇌전증도 20-30% 있을 수 있다. 신경세포의 흥분을 억제시키거나, 발작을 억제하는 항경련제는 뇌전증 치료의 근간이 되는 약물치료이다. 환자 70% 이상이 약물치료를 통해 완치가 가능하다. 약물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20~30% 환자는 약제 불응성 난치성 뇌전증에 해당되는데 이때 수술치료, 케톤식이요법 등이 이용된다. 신원철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전증을 진단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과정은 환자, 보호자와 자세한 대화를 통한 문진"이라며 "진찰을 통해 뇌전증 발작이 맞는지 여부와 어떤 형태의 발작인지를 사전 구별할 수 있음은 물론 환자에게 적합한 치료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뇌전증은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고 사회적 이슈 때문에 제도와 법이 한순간에 바뀐다면 환자들은 사회적 편견 때문에 치료를 받지 않고 더욱 음지로 숨어 질병을 숨기거나 치료를 받지 않아서 뇌전증이 악화 될 수 있다"며 "실제 잘 조절되는 뇌전증 환자들의 교통사고율은 거의 일반인과 비슷하기 때문에 나친 우려로 환자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hr/>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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