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조선해양 진해조선소 현장[자료사진]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STX조선해양의 무리수, 채권단의 무능력, 정부의 무책임". 3무(無)가 빚은 참사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STX조선해양의 법정관리행에는 당초 법정관리행 주장을 무시하고 자율협약을 맺은 첫 단추가 발단이 됐다. 회사 측은 부실을 감추고 자율협약을 신청했고, 채권단은 이를 간파하지 못한 채 이를 받아들였다. 채권단은 하릴없이 돈만 쏟아부었고 당국은 무책임하게 이를 바라만 봤다.흑자도산을 막기 위해 도입된 자율협약을 일부 기업들이 악용하면서 호미로 막을 수 있는 부실을 가래로 막는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결국 자율협약을 이기지 못한 기업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자율협약을 거친 법정관리의 경우 기업회생이 아니라 부도로 연결되는 등 법정관리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자율협약이 채권단과 기업 간의 상생을 목표로 하는 구조조정 절차로 진행돼야 하는데 채권단이 자율협약이라는 수단을 통해 경영정상화보다는 채권회수에 주력하면서 문제를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STX조선해양은 애초부터 무리하게 자율협약이 추진된 이후 구조조정 대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자금지원으로 부실만 키웠다가 결국 법정관리에 이르게 됐다. 2014년 4월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은 STX조선은 1조3000억원의 출자전환과 3조2000억원의 자금 투입으로 총 4조5000억원을 지원받았다. 정부와 정치권, 채권단, 경영진과 노조 모두 '자율'이라는 이름 속에서 보신주의와 무임승차, 책임회피 등 도덕적 해이 현상이 벌어지면서 자멸(自滅)을 자초했다. 자율협약을 받아온 중소형 조선사인 SPP조선도 숨겨진 부실로 매각협상이 결렬되면서 최악의 경우 법정관리에 들어갈 전망이다. SPP조선 사천조선소 인수를 추진한 SM그룹은 "SPP조선 정밀실사 결과 추가로 1400억원의 자금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됐으나 채권단이 추가 가격 협상에서 양보하지 않아 현 수준에서는 인수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SM그룹은 구조조정 후 생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지만 정밀실사를 한 결과 감춰진 부실이 드러났고 추가로 자금이 들어갈 곳도 나왔다. 여기에 상당한 비용을 인수자가 떠안도록 해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SPP조선은 파생상품 손실 8000억원과 신규 계열사 투자 실패 4000억원 등으로 모두 1조2000억원의 영업외손실을 내는 바람에 2015년 5월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갔고 지금까지 1조850억원이 투입됐다.채권단의 대주주 경영권 박탈은 자율적 협약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불공정 협약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부실기업의 경우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일시적인 위기에 빠진 기업에는 스스로 회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채권단의 주도의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경영권을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면 경영진은 자율협약을 통한 구조조정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기존경영자관리인유지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법정관리를 선택하기 위해 부실화를 방치할 수도 있다. 동부제철은 2014년 자율협약 이후 1년 만에 워크아웃으로 전환됐지만 정상화를 위해 매각 등을 추진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다. 2014년 당시 동부 측은 조기 경영정상화를 위해 김준기 회장이 계속 경영을 맡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부실경영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반영되지 않았다. 당시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동부제철의 경우 지금이라도 법원으로 달려가서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어설픈 자율협약 아래 경영권도 뺏기고 새로운 관리인 아래 현 경영진과 대주주에 대한 각종 민ㆍ형사책임을 묻는 소송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곽관훈 선문대 교수는 "자율협약이 본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을 가장 잘 아는 경영진이 구조조정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이 과정에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그 구조조정이 실현되는 데 장애가 되는 제도적 어려움을 해소하고,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위한 행정적ㆍ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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