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환율전쟁]'ABCD 포위망'…엔低의 목을 조이다

▲지난달 일본은행(BOJ)이 추가완화책 대신 현상유지를 결정하면서 실망감에 지난 2일 엔화가치가 급등, 일본 도쿄 증시가 요동쳤다. (AP = 연합뉴스)

<이슈추적>끝나지 않는 환율전쟁美 금리인상 늦춰지며 달러약세 가속브렉시트·中경착륙 등 글로벌리스크 안전자산인 엔화로 투자금 몰리는 현상아베 선진국 재정투입 공조 요청했지만 독일은 반대…달러당 100엔시대 전망[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아베노믹스'를 통한 돈 풀기로 만들어냈던 엔저 시대가 끝물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간 일본의 엔저를 용인했던 미국이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데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 시기도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겹치며 지난 몇년간 세계 환시장을 관통해온 강달러와 엔화약세의 틀도 바뀔 기세다. ◆엔저시대 종료, 달러당 100엔 시대 온다 = 지난 3일 엔화가치는 달러당 105엔대 중반까지 상승, 18개월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UBS등 해외 투자은행들은 연내 달러당 100엔까지 엔화가치가 치솟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베 총리와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재무상,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BOJ) 총재가 여러 차례 급격한 환율변동에 대한 경고의 메세지를 보냈지만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이미 무시하고 있다. 아베노믹스로 만들어낸 엔저 시대가 사실상 끝났다는게 시장의 전반적인 평가다. 표면적인 이유는 지난달 28일 BOJ가 엔화 약세를 유도할 추가부양책을 내놓지 않은 데 따른 실망감이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달러화 약세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지연될 것이라는 관측이 이어지면서 지난해까지 달러에 몰리던 투자자금이 엔화로 역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Fed는 9년 반만에 금리를 인상했지만 이후에는 금리인상을 보류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연내 금리인상이 1회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6월 금리인상 전망이 후퇴하고 9월 금리인상 전망이 급부상했다. Fed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3~4차례 금리를 인상할 계획이었지만, 이대로라면 상반기 중 금리를 한 차례도 올리기 어려워진 실정이다. 이로 인해 각국 투기세력뿐만 아니라 연금ㆍ뮤추얼펀드에서도 달러 매도가 나오고 있다. 달러화 약세는 미국의 이익과도 부합한다. 시기적으로도 대선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비준을 앞두고 있어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서면 부담스럽다. 미국 외환당국의 태도도 지난해와는 180도 바뀌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달 환율보고서를 통해 환율조작국 '감시리스트'에 일본과 중국, 독일 등 대미 경상수지 흑자가 큰 나라들을 포함시켰다. ◆엔고의 늪에 빠지는 일본 = 엔고 현상을 심화시키는 요인을 제공하는 나라는 미국뿐만이 아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미국(America)ㆍ영국(Britain)ㆍ중국(China)ㆍ독일(Deutschland) 등 4개국의 'ABCD 포위망'이 엔화가 약세로 돌아서는 것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 우려도 엔화를 끌어올리는 요소다.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유럽 경제에 리먼 브러더스 사태 급의 혼란이 닥쳐올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우려로 안전자산인 엔화에 돈이 몰리고 있다. 아베 총리도 지난 5일 영국 런던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정상회담 후 "영국의 EU 잔류가 바람직하다고 분명히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내달 23일로, 채 50일도 남지 않은 상태다. 중국 경제의 둔화로 인해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강해지는 것도 엔화에는 악재다. 중국 등 신흥국 경제지표가 악화되면 원유 가격을 끌어내리는 한편 시장의 위험회피 경향도 강화시킬 수 있다. 안전통화를 분류되는 엔화역시 상승압력을 받게 된다. 독일이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투입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엔화가치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 4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선진국이 모두 재정투입 공조를 통해 글로벌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고 요청했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재정투입의) 선두주자는 결코 아니"라며 에둘러 거절했다. 이는 재정을 투입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일본에는 치명타다. 재정 투입은 통상 화폐가치 상승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만약 미국과 유럽의 동참 없이 일본 홀로 재정 투입해 경기 활성화에 나선다면 엔화만 상대적인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아베 신조(앞 왼쪽) 일본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앞 오른쪽) 독일 총리가 4일(현지시간) 독일 브란덴부르크에서 회담 직후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AP = 연합뉴스)

◆달러화 약세, 전세계 자산가격 급등 = 강달러 시대도 막을 내리는 듯 보인다. 연초 대비 달러화가치는 4.5% 하락했으며, 통화바스켓 대비 달러의 가치는 1년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서부텍사스유(WTI)는 지난 2월 저점 대비 69% 상승했으며, 금값도 1분기에 16.5% 상승했다. 모두 강달러 시대에 힘을 못 썼던 자산들인데, 최근 들어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자산가격이 급등했다. 특히 금값의 상승세가 눈부시다. 지난 7일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6월물 금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21.70달러(1.7%) 상승한 온스당 1294달러에 마감했다. 15개월만의 최대치로, 이 추세대로라면 조만간 온스당 1300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달러화 약세가 계속 이어질지는 분명치 않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같은 추세가 한 순간에 뒤집어질 수 있으며, 이는 전적으로 Fed의 금리인상에 대한 시장의 인식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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