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고환율이 국내 금융지주의 밸류업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원화가치가 하락할 경우 환차손이 커지면서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배당여력과도 직결돼 주주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주요 금융지주들은 새해를 앞두고 계엄 여파로 인한 정치·경제적 불안정성에 환율까지 겹악재로 시름이 깊은 모양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환율이 1450원도 돌파하면서 금융지주 밸류업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선 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16일 이후 15년 만이다. 원·달러 환율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1400원대가 '뉴노멀'이 되면서 단기적으로는 환율이 1500원도 뚫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당분간 고환율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면서 주요 금융지주들의 밸류업 계획에도 제동이 걸렸다. 금융지주들이 약속한 주주환원책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통주자본(CET1) 비율을 관리해야 하는데 환율이 급상승하면 CET1 비율을 관리하는 데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CET1 비율은 금융사의 재무건전성을 가늠하는 핵심지표로, 보통주 자본을 위험가중자산(RWA)로 나눈 값이다. RWA는 원화 기준이어서 환율이 급상승하면 외화 대출자산이 더 불어나게 돼 CET1 비율의 하락요인이 된다. 통상 환율이 10원 오를 경우 CET1 비율 변동이 0.02%포인트(2bp)가량 하락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3분기 기준 4대 금융지주의 CET1 비율은 11~13% 수준으로 ▲KB금융지주(13.85%) ▲신한금융지주(13.13%) ▲하나금융지주(13.17%) ▲우리금융지주(11.96%) 등이다. CET1 비율이 13% 이상일 경우 적극적인 주주환원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주요 금융지주들은 주주환원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기 위해 13% 이상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KB금융지주는 "CET1 비율을 13% 중반으로 유지하기 위해 RWA 관리에 힘쓰고 있다"며 "환율변동은 실물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최근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소상공인 지원사업 현황 점검 등 경기둔화로 인한 자금 경색에 대비한 공여방안 등을 논의한 바 있다"고 전했다.
4대 금융지주 모두 '코리아 밸류업지수'에 편입된 만큼 다른 금융지주사들도 CET1 비율 사수를 위해 RWA 관리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CET1 비율 유지를 위해 위험자산을 축소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며 "연말 지표 관리를 위해서도 연체율이 높은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대출 축소 등의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한편 금융당국도 올해 도입예정이었던 스트레스 완충자본 규제 도입을 내년 하반기 이후로 연기하고 은행의 해외법인 출자금 등 비거래적 성격의 비헤지 해외자산에서 발생하는 환율변동 시장리스크는 위험 가중자산 산출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히는 등 환율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밸류업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가 CET1 비율으로 지표 관리에 힘을 쏟을 것"이라며 "환율 추이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등 차질 없이 밸류업 계획을 실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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