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 2명과 소주 6~7병 나눠 마셔…음주 뺑소니, 현장 벗어나 잠적하면 무죄 가능성?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div class="break_mod">‘법조 X파일’은 흥미로운 내용의 법원 판결이나 검찰 수사결과를 둘러싼 뒷얘기 등을 해설기사나 취재후기 형식으로 전하는 코너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삶을 바꿔놓을 때도 있다. 시작은 평범하지만 결과는 끔찍할 수 있다. 씁쓸한 사건의 시작은 직장 동료와의 ‘삼겹살 회식’이었다. 지난해 1월9일 금요일 오후 5시. 30대 허모씨는 직장 동료 2명과 삼겹살 식당에서 만나 소주잔을 기울였다. 금요일 저녁 시간이라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술자리를 기울이기 좋은 때 아닌가. 허씨도 그렇게 오후 7시까지 동료들과 4~5병의 소주를 나눠 마셨다. 술자리는 간단히 끝나지 않았다. 오후 7시30분 술자리는 인근 횟집으로 옮겨졌다. 오징어 회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허씨 등 직장 동료 3명은 오후 10시까지 소주 2병을 더 마셨다. 1~2차를 끝낸 그들은 인근 노래연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자정까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노래방에는 병맥주 8~10병이 들어왔다. 음주가무는 오후 5시부터 자정까지 이어졌던 셈이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아시아경제DB
물론 허씨도 술을 마셨다. 움직일 수 없는 팩트다. 허씨는 소주의 경우 동료들과 비슷하게 마셨고, 맥주는 거의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허씨는 소주 6~7병의 3분의 1인 2병가량을 마신 셈이다. 직장인들이 금요일 저녁에 만나 삼겹살로 회식하고 노래방에 가는 장면은 흔한 모습이다. 허씨도 술자리가 끝난 뒤 얼마 후 벌어질 일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씨는 유명한(?) 인물이다. 아니 유명해진 인물이다. 수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 나섰다. 그의 행적을 좇고자 노력했다. 허씨는 이른바 ‘크림빵 뺑소니’ 사건을 저지른 가해자다. 지난해 1월10일 오전 1시40분께 청주시의 한 도로에서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했다. 전날 밤 10시까지 소주를 마셨고, 자정까지 이어졌던 ‘맥주 자리’에 함께 있었던 인물이 다음날 오전 1시40분께 운전을 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당시 도로에는 임신 7개월의 아내에게 크림빵을 전하고자 길을 건너던 20대 강모씨가 있었다. 허씨는 강씨를 들이받았다. 곧바로 병원에 데려가는 등 사고 처리에 나섰다면 사건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크림빵 뺑소니 강씨/ 사진= mbc 방송 캡쳐
허씨는 그대로 달아났다. 강씨는 현장에서 흉추 골절, 대동맥 파열 등 전신의 다발성 손상으로 숨졌다. 우리는 그를 ‘크림빵 뺑소니’ 사건의 피해자로 부른다. 강씨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사고를 당했다. 강씨도 그의 아내도 그렇게 삶을 마감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게다가 아내의 뱃속에는 꿈에도 만나고 싶었던 아이가 있었다.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진 뒤 수많은 사람이 공분했다. ‘크림빵 뺑소니’ 사건 범인을 찾고자 수사기관은 물론 여러 사람이 힘을 쏟았다. 자동차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각종 제보와 정보가 이어졌다. 허씨는 숨죽인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TV와 신문에 자신이 저지른 사건 관련 뉴스가 나왔다. 인터넷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허씨는 조용히 사고를 은폐하려 했다. 다른 지역에서 차량 부품을 구입해 사고 당시 파손된 부분을 직접 수리하고자 했다. 하지만 차량 부품을 구매하면서 신용카드를 사용한 게 문제였다. 결국 허씨는 사고 이후 19일 만에 자수했다. 허씨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도주차량)’ 혐의는 별다른 이견 없이 유죄 판단을 받았다. 문제는 음주운전 혐의였다. 허씨는 분명 술을 마셨다. 소주 2병가량 마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허씨는 사건 이후 19일만에 나타났다. 허씨는 사건 직후 달아났기에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할 수 없었다. 그저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허씨는 음주운전일까 아닐까. 혐의가 인정되면 형량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검찰은 허씨의 혈중알코올농도를 0.162%로 특정했다. 허씨가 소주 900㎖를 마셨고, 체중은 67.5㎏이라고 판단해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한 결과다. 사실 허씨가 얼마의 술을 마셨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소주는 3명이 비슷하게 마셨다는 동료들의 증언이 있을 뿐이다. 검찰이 특정한 혈중알코올농도 0.162%는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크림빵 뺑소니 사건 가해자 / YTN 크림빵 뺑소니 사건 뉴스 캡쳐
1심은 “극단적으로 유리하게 해석해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할 경우 혈중알코올 농도가 처벌기준치에 못 미치는 0.035%에 불과했다고 추정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면서 무죄 판단을 내렸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1% 이상의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을 한 사실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수정했지만, 법원은 이러한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은 “피고인이 섭취한 알코올의 양, 음주 종료 시간, 체중 등 위드마크 공식의 적용을 위한 전제사실들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허씨의 음주운전 혐의는 대법원에서도 무죄로 정리됐다. 허씨는 징역 3년의 실형을 확정받았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크림빵 뺑소니 사건 주인공은 그렇게 법적 처분을 받았다. 허씨는 음주운전을 한 것일까, 안 한 것일까. 허씨에게 음주운전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은 정당할까. 검찰이 애초부터 과한 혈중 알코올농도를 적용한 것으로 봐야 할까. 허씨의 대법 선고는 나왔지만, 논란은 고스란히 남았다. ‘크림빵 뺑소니’ 사건은 음주 이후 교통사고를 저지른 사람이 일단 현장을 벗어나 한동안 숨어 있으면 ‘무죄’ 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고 말았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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