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민차장
대법원
A씨는 2001년 다른 여성과 바람이 났고, 딴 살림을 차렸다. 이후 부인은 두 명의 자녀를 아버지 없이 키워야 했다. A씨는 2006년 재판상 이혼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법원은 2008년 '이혼 불가'를 확정했다. 하지만 5년이 흐른 뒤 다시 낸 이혼 청구 소송에서 법원의 판단이 달라졌다. 1심은 물론 2심도 이혼청구를 허가했다. 딴 살림을 차린 전국의 불륜 남녀로서는 귀에 솔깃한 뉴스 아닌가. A씨가 유책배우자인 것은 분명한 데 세상이 변했으니 이제 바람난 사람의 이혼도 가능해진 것일까. 하지만 법원 판단을 오해하면 안 된다. A씨의 자녀 2명은 모두 성년이 됐다. 한 명은 결혼까지 했다. A씨는 부인과 15년 별거했지만, 생활비, 양육비, 자녀 결혼비용 등 10억 원가량의 경제적 부양의무를 실천했다. 부양의무마저 내팽개친 '바람남'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부인은 여전히 이혼을 반대했지만, 법원은 이혼을 허가했다.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별거하면서 혼인생활의 실체가 흐려졌고, 그 기간 배우자와 자녀 부양에 나섰다는 점이 고려됐다. 대법원이 유책주의 판례를 유지했지만, 법원 내부에서는 예외를 폭넓게 인정하는 흐름도 엿보인다. 다만 A씨 사례처럼 예외를 인정하려면 나름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세상이 변했다고 가정 관계를 파탄 낸 이들이 당당하게 재판상 이혼을 청구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누군가의 욕망 실현을 위해 가정파괴를 허용할 수는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A씨의 판결로 '무엇'인가를 기대한 사람들이 주목해야할 부분이다.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