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人]'2전 2패'…롯데그룹 長子의 비극

6일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주주총회에서 신동빈 회장 압승3개월 후 주총 재대결 예고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민유성 SDJ코퍼레이션 고문의 발언을 듣고있다.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2전2패'. 지난 주말 일본에서 열린 롯데그룹 형제간 표 대결에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SDJ코퍼레이션 회장)이 패했다. 지난해 8월 주주총회에 이어 두 번째다. 신 전 부회장은 오는 6월 주총을 통해 또 다시 표 대결을 하겠다며 장기전을 예고했다. 주총까지는 3개월. 이 기간동안 신 전 부회장이 그동안과는 다른 논리를 내세울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롯데그룹의 장자(長子) 신 전 부회장은 처음부터 '아버지'를 앞세워 등장했다. 기자들을 불러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하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육성을 공개하고, 위임장에 서명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줬다. 일본 롯데는 본인이, 한국 롯데는 동생 신동빈 회장이 각각 맡아 경영해야 하는데 신 회장의 욕심으로 이 균형이 깨졌다는 것이다. 형제의 경영권 다툼은 지난해 7월 말 수면위로 드러나기 시작해 벌써 8개월째다. 법적 공방과 원색적인 폭로전이 이어졌지만 신 전 부회장의 논리는 '아버지의 뜻'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동생의 무능력을 지적하거나 회사의 구성원들이 본인을 지지한다고도 주장했지만, 검증에는 실패했다. 전세역전을 시도한 두번의 주총은 신동빈 회장의 압승으로 끝났다. 종업원지주회를 대상으로는 상장을 통해 25억원씩 챙겨주겠다는 회유책도 내놨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롯데호텔 34층 집무실에서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아버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인터뷰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형제의 난'의 유일한 근거인 장자계승의 논리도 제대로 풀지 못했다. 대리인격인 민유성 SDJ코퍼레이션 고문(전 산업은행 총재)은 "맏아들이 회사를 물려받는 것이 한·일 기업문화의 보편화된 정서"라고 했고, 신 전 부회장을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논리는 꼬여있다. 롯데는 한국기업이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후계자로 지목된 장자는 일본에서만 경영활동을 했다. 동생은 무능하고 형은 능력을 갖췄지만, 형이 맡았던 일본 롯데 매출(약 4조원)은 한국(약 83조원)의 5%에 그친다. 민유성 고문은 "일본은 자체 사업보다는 한국에 자금을 조달해주는 창구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능력있는 후계자가 왜 동생의 사업에 돈줄을 대는 역할만 해왔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보편화된 정서'를 앞세우기엔 창업주이자 94세의 노인인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의 민낯을 지나치게 노출시켰다는 지적도 받는다. '유통 깡패'로 불릴만큼 롯데는 세계 곳곳에 간판을 올리며 패기있고 저돌적인 행보를 보였다. 한국이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를 받게 됐을 때 재계인사 가운데 처음으로 2000만달러의 개인 재산을 출자하고 5억달러의 외자를 도입한 것도 신 총괄회장이다. 그렇게 총기 넘치던 창업주는 이제 녹음기 앞에 서 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며 동생이 신청한 성년후견인 지정 심리에 참석하기 위해 지팡이를 짚었다. 법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는 "이런 일로 법원을 가게 될 줄은 몰랐다"며 본인의 신세를 한탄했다. 그러나 신 전 부회장의 가장 뼈아픈 한계는 동생과의 경영권 싸움 뿐 아니라 내부 측근들 사이에서도 주도권을 갖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그가 내놓는 대부분의 주장들은 민유성 고문을 통해 언론과 대중에게 전달된다. '기업인 신동주'의 역량이나 정체성은 여전히 무명에 가깝다. 희박해 보이기는 하지만, 신 전 부회장의 주장이 모두 옳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는 막장드라마 같은 지루한 싸움을 끝내고, 법적 근거와 절차로 검증해야 한다. 기업을 경영하는 리더에게 있어서 악(惡) 보다 큰 죄는 무능이다. 삼성, 현대, 두산 등 국내 대표기업들이 그랬듯, 우리나라 기업문화는 무능한 장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간의 관심을 받는 것은 승자가 아닌 패자, 신 전 부회장의 행보다. 롯데의 본격적인 경영 정상화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승리가 아니라 분쟁을 일으킨 당사자인 신 전 부회장의 완전한 패배 이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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