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나영기자
[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지난 8일 오후 2시 서울시 목동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 식품 회사 영업사원 2년차인 지동훈(가명ㆍ28)씨는 차 트렁크를 열고 6kg짜리 온수통과 1000개들이 종이컵 한박스, 신제품 판촉물 500장을 카트에 옮겨 실었다. 오늘만 세번째 마트 방문이다. 4시까지 사무실에 가야하는데 들릴 곳이 하나 더 남았다. 마음이 급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던 찰나, 카트 머리를 들이밀어 간신히 잡아 탔다. 그가 관리하는 서울 시내 대형마트는 12개.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매장 가공식품 담당자를 상대한다. 연세대학교 2008학번. 2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고향에서는 인재라고 소문난 지씨다. 그러나 직장에서 만난 '갑(甲)'들 앞에서 그는 병아리 영업사원일 뿐이다. 매장에서 제품을 잃어버렸는데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거나 예약해놓은 음료 판촉행사 구역을 경쟁사에 빼앗긴 쓰라린 경험이 한 두번이 아니다. "다 경험이겠거니" 정신력으로 버텨온 지씨는 생각지도 못한 데서 '한방'을 맞았다. 시음 행사장에 낑낑대며 온수통을 나르고 종이컵을 줄 세우고 있는데, 옆에서 상품 진열을 하던 마트 직원 아저씨가 느닷없이 반말로 물었다. "고졸 출신이야?" 지씨는 "때론 내가 택배 사원인지, 영업 사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이런 회의감 때문에 퇴사하는 동료들도 많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날 오후 광화문의 한 IT 기업. 사내 여자화장실에선 입사 1년차 이미지(가명ㆍ27)씨가 거울을 앞에 두고 서 있다. 이씨는 "아에이오우"를 연발하며 얼굴 근육을 풀었다. 눈으로는 보고서 내용을 반복해서 훑었다. "잘할 수 있어." 그녀는 스스로 최면을 걸며 본부장실로 향했다. 이씨는 입사 6개월 무렵부터 임원 보고를 직접 하고 있다. "신입이니까 시키는 것만 잘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은 산산조각이 난지 오래다. 업무 특성상 자신이 담당한 부분은 계획ㆍ진행ㆍ성과까지 모두 책임질 뿐 아니라 임원 보고도 직접 해야 한다. 이씨는 애플리케이션(앱)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포털의 배너 광고, 파워 블로거와의 연계 등을 통해 앱을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이다. 그녀는 "중요한 업무가 있을 때는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임원 보고를 해야 할 때도 있다"며 "처음에는 신입이 이런 것도 해야 하나 싶은 부담감 때문에 보고 전날 잠을 설치곤 했다"고 말했다. 보고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이씨의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나 지금 보고 들어가야 하는데 혹시 우황청심환 있는 사람?" 그녀의 동기가 동기 카톡방에 SOS를 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