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나인(9)族’을 아십니까?…스마트폰 달콤·살벌한 늪

예배보고 데이트할 때도 스마트폰 열중…거북목 질병 우려, 보행 사고도 이어져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고개 숙인 사람들이 넘쳐난다. 집이나 직장은 물론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타고 갈 때도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숫자 9(나인)처럼 고개 숙인 형상의 모습이다. 궁궐에 삶이 매인 '나인(內人)'처럼 한 곳(스마트폰)에 삶의 희로애락을 의지하는 이들, 그들을 '나인(9)族'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스마트톤에 빠져 고개를 숙이다 안전사고나 각종 질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등 사회적인 병폐 현상도 심각해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마트폰 전용 보행자길=중국 충칭(重慶)시 양런(洋人)가 관광 지구에는 '스마트폰 보행자길'이 따로 마련돼 있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는 이들이 서로 부딪히는 것을 방지하고자 아예 전용 '보도(步道)'를 만들었다. 벨기에 '앤트워프'시에도 유사한 길이 있다. 'TEXT WALKING LANE'이라는 문구를 지면에 새긴 이 길은 스마트폰 사용자의 안전한 보행을 위해 설계됐다. 태국도 마찬가지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워싱턴DC에서 스마트폰 보행자를 위한 전용 인도를 만들어 실험에 나서기도 했다. '나인족' 탓에 보행자들의 안전 문제가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난달 29일 중국 저장성 원저우시, 두 아이의 엄마인 왕모(28)씨는 스마트폰을 보며 강가를 걷다가 그대로 빠져 익사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중국에서는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만 보며 사는 57번째 민족이라는 의미에서 '디터우(低頭)족'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그 정도로 스마트폰으로 인한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7일 교육안전공단에 따르면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 시 사고위험이 7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배' 때도 스마트폰 집중="목욕탕 다녀왔는데 탕안에서 손만 내밀고 스마트폰 게임 하는 분 봤네요." "데이트할 때도 '카카오톡'하며 혼자 미친 듯이 웃어요." 한 남성 커뮤니티에 올라온 '스마트폰 중독' 관련 글이다. 한참 수술이 진행되고 있는데 수술대 위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환자 사진이 온라인 공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양병회 한국교회연합 대표회장(목사)은 지난달 22일 한국정보화진흥원 주최 '스마트폰 대토론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면 눈을 깔고 스마트폰을 열심히 하는 신도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불교와 천주교 쪽 인사들도 이 주장에 공감의 뜻을 나타냈다. 그만큼 스마트폰 중독 증상은 사회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거북목 질환을 아시나요=스마트폰 사용이 대중화되면서 급증하고 있는 질병이 '거북목 증후군(Turtle neck syndrome)이다. 대표적인 증상으로 뒷목과 어깨가 뻐근하고 아프다는 특징이 있다. 어깨 근육이 많이 뭉쳐 있고 두통이 생기면서 쉽게 피곤해진다. 작업능률과 학습능률이 떨어질 뿐 아니라 신경질이 나고 과민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거북목'으로 진료 받은 환자수는 181만9000여명에 이른다. 2011년 160만명, 2012년 169만명, 2013년 171만명 등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거북목을 방치할 경우 목 디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관련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거북목'을 막아주는 '매켄지 체조'가 유행하고 있다. ◆싱글족, 스마트폰 희로애락=혼자 사는 이들은 종일 스마트폰을 통해 카카오톡 등으로 대화하면서 각종 정보를 찾고 '웹툰'을 보는 것을 삶의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자신의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글을 올리면 '좋아요' 등 호응이 뒤따르는지 집착한다. 정상적인 사람과의 관계를 기피하고 가상 공간의 관계에만 의존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에 몰입된 삶은 '정신의 황폐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중독을 방치하면 뇌는 피로를 느끼고 웬만한 자극에는 재미를 느끼지 못해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박사는 "디지털 생활과 아날로그 생활의 균형 회복이 중요하며,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활성화하는 사회문화운동의 추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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