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사이언스픽션(SF)에 열광했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과학적 사실에 기반해 상상력을 동원해 허구의 사건을 재구성하는 SF는 지난 반세기 동안 미래를 현실로 구현하려는 기업들에게 창조와 혁신의 원동력이 돼 왔다. SF는 유독 미국, 일본에서 인기 있는 장르다. 과학 기술에 대한 관심이 문학과 영화 등 예술장르에도 반영된 결과다. SF는 지금까지 인류의 미래와 기술적 진보에 큰 공헌을 해왔다. 1950년대 아톰을 보며 자라온 일본인들은 인간과 닮은 로봇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2족 보행 로봇을 개발하고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에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사용하고 있는 배경 중 하나다. 일본 정부도 AI 기술 개발 지원을 위해 올해부터 약 100억엔(한화 1000억원) 규모의 정부 예산을 기업들에게 지원할 계획이다. 미국은 SF 그 자체를 기업들이 구현하고 있다. 과거 SF에서 단골 손님처럼 등장했던 레이저 광선포는 이제 최신 전투기에 탑재돼 SF 영화의 한장면처럼 적들을 공격할 수 있게 됐다. 소설가 필립 K 딕이 그린 미래를 잠시 살펴보자. 필립 K 딕은 로봇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을 가진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을 소설속에 등장시켰다. 소설 마이너리티리포트에 등장하는 자동차는 현재 구글을 비롯한 글로벌 IT 기업들이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 그 자체다. 영화 매트릭스 역시 필립 K 딕의 원작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 영향을 받았다. 가상현실 장치를 뇌에 직접 연결해 새로운 세상에 접어드는 등 영화의 주요한 장면들이 이미 1968년경 SF에 의해 제시된 바 있다. 이같은 가상현실은 최근 페이스북이 인수한 오큘러스 리프트, 삼성전자의 기어VR을 통해 조금씩 현실화 되가고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인터스텔라', '마션' 등도 언젠가 인류가 구현할 미래다. 아마존의 드론 사업 역시 SF에서 여러번 등장했던 소재다. 한국은 SF 불모지에 가깝다. 그나마 어린 시절에는 낫다. 우리 아이들은 만화책으로 된 '와이(Why)' 시리즈를 읽고 각종 과학적 상식을 주워삼으며 친구들과 대화를 이어간다. 지금 성인이 된 사람들도 어린시절을 추억해 보면 당시 과학 잡지 등을 읽고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이라인, 필립 K 딕 등의 소설 등을 읽으며 미래에 대한 상상을 마음껏 펼쳤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SF가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지금은 잊혀진지 오래다. 중학생만 되도 SF와 과학 관련 책들 대신 입시를 위한 참고서를 손에 쥐어주고 성인들 역시 SF 대신 판타지에만 열광하고 있다. 한국의 현실이다. 소설가 복거일씨는 최근 자유경제원의 한 강연에서 "SF는 곧 우리의 미래를 의미한다"면서 "이같은 가치를 모르는 한국을 바라보면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유수의 경제연구소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추천하는 책들을 살펴봐도 SF는 없다. 자기개발서나 경영 관련 서적이 대부분이다. 대부분 누군가의 성공담을 읽으며 성공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성인의 일과가 된지 오래다. 매일같이 위기를 부르짖으며 우리 기업들은 '잘하는 것'에만 집중하려 한다. 이대로라면 꿈과 미래는 사라지고 현실만 남는다. 우리 기업들에게 SF가 필요한 이유다. 명진규 기자 ae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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