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상실에 대하여

박철응 금융부 차장

설치류(齧齒類)를 워낙 싫어한다. 오죽하면 다람쥐도 곱게 보이지 않을 정도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언제부턴가 햄스터 얘기를 꺼냈을 때도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우리 집에 쥐를 들일 수는 없다"고, 시답잖은 엄포를 놨다.그렇게 몇 차례의 실랑이 끝에 잘 봉쇄했다고 생각하고는 잊고 지냈다. 아이가 방과 후 수업 중 하나로 '생명과학'을 한다고 했을 때도 그저 그런가보다하고 넘겼다. 그런데 아이가 얼마 전 의기양양하게 선포했다. "생명과학 수업에서 선생님이 햄스터 주신대. 선생님이 주시는 걸 안 받어? 괜찮지? 데리고 온다!" 생각지 못했던 기습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 들어온 쥐 아닌 새끼 햄스터에게는 '햄버거'라는 이름까지 붙여졌다. 물론 아이는 신났고, 나는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내는 햄스터에게는 50평쯤 될만한 집과 먹이, 바닥에 깔아줄 톱밥, 물 공급 파이프 등을 마트에서 잔뜩 사왔다. 햄스터 한 마리 갖고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싶어 그제야 눈길을 줬다. 한 번, 두 번 보다보니 영 못 볼 건 아니었다. 세 번, 네 번 보다 보니 그 녀석,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아이가 이렇게 좋아하는데, 내가 이기적으로 굴었구나 하는 반성도 찾아왔다. '그래, 같이 살자'고 생각하니 더 친근해졌다. 노는 꼴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밤에 자다 깨서 물 먹으러 가다가도 한 번씩 확인해 보곤 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며칠 전 퇴근해 집에 가니 아이는 "햄버거가 계속 잔다"고 했다. 햄스터 집을 흔들어봤다. 미동도 없다. 낭패감이 밀려왔다. 다음날 아이는 울면서 전화를 걸어왔다. 나무 밑에 잘 묻어주고 명복을 빌어줬다고 한다.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설치류를 싫어하는 것 말고도 이런 상실감을 안겨주게 될까봐 걱정이었던 게 생각났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실을 겪었던가. 세상은 항상 제멋대로였고 그토록 붙잡고 싶었던 것들은 대개 허망하게 떠나가곤 했다. 차디찬 담벼락에 기대 아득히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눈물을 동물처럼 꾸역거리지 않았던가. 어린 아이에게 아직은 상실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는 새로운 햄스터 혹은 더 큰 동물을 원하고 있다. 다시 고민이다. 지난 주말에는 가수 동물원과 김광석의 노래로 가득 채워진 뮤지컬을 봤다. 나를 비롯한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 곳에서 잃었던 무언가를 다시 찾은 기분이 들어서일까. '햄버거'처럼 어쩔 수 없는 상실도 있지만 알면서도 스쳐 흘려보내는 소중한 것들도 참 많은 것 같다.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혜화동' 중에서) 박철응 금융부 차장 her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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