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중산층의 기준

전필수 증권부장

"30평형 이상 6억원이 넘는 아파트가 있고, 금융자산 5억원에 2000㏄ 이상의 승용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 아닐까요." 40대 후반의 모 그룹 계열사 부장이 부원들과 중산층에 대해 토론을 하는 자리에서 입사 2~3년 차 여사원이 한 얘기라며 들려준 얘기다. 함께 듣던 중년의 남성들은 씁쓸한 입맛을 다시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세상에 그 정도는 돼야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네요." "아파트는 그렇다 쳐도 금융자산 5억원은 좀 무리인 듯싶지만 '하우스 푸어'를 중산층으로 포함시키긴 애매할 수도 있으니 금융자산이 좀 있긴 해야겠군요."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속으론 '나는 중산층에 해당되나' 하는 생각에 가계의 '대차대조표'를 열심히 굴려보았다. 기준은 다소 다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중산층에 대한 담론은 대개 이런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중산층 담론을 꺼낸 부장이 갑자기 프랑스의 중산층 개념을 아느냐고 물었다.  "글쎄요. 프랑스에선 재산이 얼마나 있어야 중산층인가요"라고 되물은 후 속으로 '1유로가 1200~1300원 정도 하니 100만유로, 우리 돈으로 12억~13억원 정도면 중산층 아닐까'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예상치 않은 답이 돌아왔다. "주말에 손님을 초청해 직접 요리를 해줄 수 있고, 테니스 같은 스포츠를 한 가지 이상 하고, 불의를 봤을 때 참지 못하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중산층이라고 합니다." 뒤통수를 제대로 한 대 맞은 듯했다. 한국의 중산층 중 과연 프랑스 중산층 기준에 속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20대 여직원이 얘기했다는 한국의 중산층 기준에 부합하는 이들이 몇 퍼센트(%)인지 알 수는 없지만 프랑스 기준 중산층은 그보다 훨씬 적지 않을까. 솔직히 개인적으로 그런 (프랑스식) 중산층을 본 기억이 없다.  운동은 건강을 챙긴다며 열심히 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순자산 10억원 이상인 한국의 중산층(실은 중상층)은 너무 바빠 가족을 돌볼 틈도 없는데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 본인이 직접 요리를 한다니 '언감생심'이다.  불의를 보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 재테크와 아이들 교육에 '올인'하는 이들에겐 쓸데없는 '오지랖'일 뿐이다.  가족과 이웃을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우리에게도 중산층의 기준이 되는 날이 올까. 전필수 증권부장 phils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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