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때 골프장서 배운 주식, 700배로 키운 '마젤란 펀드' 대기록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피터 린치(Peter Lynch)는 세계 최고의 부호 중 한 사람인 워런 버핏(Warren Buffett)과 함께 월가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싸고 좋은 주식에 오랫동안 투자해 천문학적인 누적 수익률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가치투자자이자 수식어처럼 따라다니는 '마젤란 펀드'를 700배로 키운 '역사상 가장 성공한 펀드매니저'다. 그는 1944년 미국에서 출생해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경영전문대학원(MBA)을 졸업한 이후 25세 월가에 입성했다.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Fidelity Investments)의 애널리스트로 입사했으나 펀드매니저로 전환해 1977년 약 2000만달러에 불과했던 마젤란 펀드를 1990년 140억달러로 키웠다. 연평균 수익률은 30%에 육박했다. 피터 린치가 13년 동안 이룬 연평균 30% 수익률을 대수롭지 않게 느끼는 투자자들이 간혹 있지만 이는 지금도 깨지지 않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워런 버핏이 50년대 투자조합을 결성해 약 50년 동안 이룬 수익률은 연평균 약 20%였다. 우량 기업들이 포진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연평균 수익률이 15%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골프장에서 배운 주식= 피터 린치는 주식을 골프장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탓에 11세 때 학비를 벌기 위해 골프장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주워들은 주식이야기는 MBA를 갓 졸업한 20대 중반의 청년을 월가로 이끌었다. 월가에 입성한 그를 전설로 만든 기업은 다름 아닌 '던킨 도너츠'였다. 그는 어느 날 아침 수많은 직장인들이 도너츠를 먹는 장면을 포착하고 매일 아침 소비되는 도너츠의 존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기업분석을 거친 후 투자에 나서 큰 수익을 거뒀다. 피터 린치가 펀드매니저를 맡은 이후 초기 성과의 상당 부분은 던킨 도너츠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터 린치는 투자 아이디어를 생활 속에서 발견해 오랜 기간 투자하는 방식으로 꾸준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우연히 맛본 '부리토' 맛에 빠져 투자한 '타코벨'을 비롯해 자동차기업 볼보, 정보기술(IT)기업 애플, 의류기업 갭 등은 던킨 도너츠와 함께 대표적인 생활 속 투자성공 사례로 꼽힌다. 워런 버핏이 코카콜라, 시즈 캔디 등에 투자해 큰 수익을 거둔 사례와도 흡사하다. 물론 무작정 생활 속 기업에 투자한 것은 아니다. 그는 주가수익비율(PER)을 주당순이익(EPS)으로 나눈 투자지표인 주가수익성장비율(PEG)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주가가 저평가됐거나 추세 기울기가 낮은 종목을 선택했다. 그는 "10루타(10배 오르는) 종목은 항상 곁에 있다. 잘 알고 있는 회사에 투자하라"고 강조하며 "주식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운이 좋으면 큰 보상을 얻을 수 있지만 이는 마라톤 선수가 봅슬레이 경기에 참가해 명성을 위태롭게 하는 불필요한 경쟁"이라고 강조했다. ◆발로 뛰어 발굴한 기업= 피터 린치는 13년 동안 마젤란 펀드를 운용하며 9번의 폭락장을 경험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펀드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할 때에도 그는 어김없이 투자자들에게 플러스 수익을 안겼다. 싸고 좋은 기업에 오랫동안 투자해야 한다는 투자 철학을 고수한 결과다. 그가 투자한 싸고 좋은 기업은 저절로 얻어지지 않았다. 펀드매니저 생활 13년 동안 매년 수백 곳의 기업을 탐방해 최고경영자(CEO)의 경영철학, 임직원들의 근무 환경 등 계량화할 수 없는 부분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계량적 분석과 함께 정성적 지표를 투자결정에 활용한 셈이다. 그가 주식투자를 위해 경영학이나 통계학을 공부하는 것보다 역사나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고 주장한 배경도 비슷한 맥락이다. 피터 린치 역시 사학ㆍ심리학 등 인문학 공부에 주로 관심을 쏟았다.피터 린치는 "일반적인 투자자들은 주가의 움직임에만 몰두하고 실제로 기업이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며 "주가의 변화를 읽는다고 투자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꼬집기도 했다.피터 린치는 13년 동안 마젤란 펀드를 운용하면서 약 1만5000개 기업에 투자했다. 이들 기업 중 최소 3분의 1은 직접 방문해 투자를 결정했으며 또 다른 상당수의 기업은 생활 속에서 발굴했다. 딸의 생일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2000개 기업의 종목코드를 줄줄 외우고 다녔던 그를 믿고 투자한 투자자는 피터 린치가 월가를 떠나는 순간 100만명에 달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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