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명절증후군

류정민 사회부 차장

서울 야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한강의 한 카페. 은은한 조명 아래 깔끔한 슈트 차림의 남성이 서 있다. 미리 준비한 샴페인, 케이크 그리고 반지와 함께 '달콤한 약속'을 전한다. "결혼하면 정말 행복하게 해줄게. 삶이 힘겨울 때 항상 너의 곁을 지켜줄게." 또 하나의 커플이 결혼을 선택하는 순간이다. 신혼의 풋풋한 사랑은 자체로 아름답다. 그날의 약속만 지켜진다면 얼마나 행복한 인연이 계속되겠는가. 하지만 악몽(?)의 신혼 첫 명절이 시작되고 환상은 깨지고 만다. 예정에 없던 손님은 몰려들고, 술상ㆍ다과상 차리기와 정리가 반복된다. 허리는 끊어질 것 같고 머리도 아프고, 소화도 안 된다. 믿었던 남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누워서 TV만 보고 있다. 아내는 사실 명절 음식 준비할 때부터 힘겨운 상황이었다. 그렇게 명절이 끝나고 나면 우울증까지 동반돼 며칠을 앓고 또 앓는다. 약도 잘 듣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명절증후군'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명절증후군의 공습에 속수무책 당할 수는 없다. 청혼 당시의 달콤한 약속, 이제 실천할 때가 됐다. 추석은 좋은 기회다.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최현석, 레이먼 킴 등 유명 요리사만 그런 칭호의 주인공이 되라는 법이 있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명절 음식은 여성이 준비하는 것이란 고정관념부터 깨자. 귀한 명절 음식, 괜히 망칠까 걱정도 되겠지만 일단 부딪쳐보자. 일단 앞치마부터 두르자. 깨끗하게 손을 씻고 명절 음식에 도전해보는 거다. '추석의 꽃', 송편을 만들려면 반죽이 얼마나 중요한가. 좋은 반죽을 위해서는 기술은 물론이고 힘도 요구된다. 적당히 물을 섞고 이리저리 힘을 주어 눌러보면 왜 명절 이후 어머니와 아내가 진통소염제를 달고 사는지 이해할 수 있다. 반죽을 끝냈다면 이제는 송편이다. 처음에는 볼품없는 송편이 나오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꽤 봐줄 만한 모양으로 바뀌지 않을까. 각종 전 부치기에도 도전해보자. 직접 프라이팬을 잡고 김치전, 명태전, 동그랑땡, 새우튀김을 만들어보자. 할 일은 또 있다. 세심함과 체력이 함께 요구되는 '알밤' 까기다. 과일칼을 이용해 하얀 속살이 드러날 때까지 알밤 껍질을 깎으면 된다. 명절 음식 하나하나 어디 쉬운 게 없다. 몸만 힘든 게 아니다. 어쩌면 정신적인 부담과 고통이 더 힘겨운 일인지도 모른다. 함께 음식을 준비했다고 끝이 아니다. 아내의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이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이제 공감의 힘을 믿을 때다. 삶이 힘겨울 때 당신 곁을 지켜준다는 그 눈빛에 담긴 진심이 전달된다면 명절증후군도 눈 녹듯 사라질지 모른다. 류정민 사회부 차장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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