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숙 KDI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국가예산을 간단히 표현한다면 돈 들어갈 곳을 정한 후 그만큼을 세금으로 충당하는 계획이다. 그런데 이 건조한 표현은 국가예산의 핵심을 그다지 잘 잡아내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핵심은 예산과 관련된 모든 결정이 국가적 차원의 치열한 우선순위 논쟁이라는 점이다. 각 연도 세입과 세출의 상대적 규모는 예산을 통해 달성하려는 정책목표와 재정건전성 목표를 저울질한 결과이며 예산안에 포함된 개별항목의 규모와 존재는 그만큼 무게를 인정받지 못한 또 다른 정책들이 우선순위 결정에서 밀려난 결과이다. 매년의 예산안은 그야말로 수많은 가치관과 정책안이 부딪히고 깎여진 결정체인 것이다. 따라서 예산안은 정부가 한국 경제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으며, 향후 어느 방향으로 향하려는지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표지판이다.2016년 예산안이 최근 발표됐다. 2015년에 비해 총수입은 2.4% 증가한 데 비해 총지출이 3% 증가해 확장기조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국가채무비율은 40%를 초과했다. 정책 간 우선순위에서는 청년일자리와 경제활력 제고에 우선순위가 두어졌다. 국가채무비율 증가를 소폭 감수하고라도 경제활력을 높이는 것, 심화되고 있는 세대 간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청년고용을 확대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판단이 읽혀지는 예산안이다.언제나 그랬듯 좀 더 화끈하게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과 재정건전성을 해쳤다는 입장, 양방향으로부터의 비판이 예상된다. 예산안이 본질적으로 가치관과 정책방향의 충돌인 이상 이런 비판들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단 이러한 비판들이 본인들이 중시하는 것 외의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치우친 시각이라면 얘기가 다르다.국가채무비율을 조금도 증가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경직적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어느 정도의 범위에 유지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준수하는 것이며 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마련한 재원을 적절한 곳에 잘 사용해 훗날 더 큰 효과를 거두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번 예산안에서 국채비율이 1.6%포인트 증가하는 것 자체만 비난하거나 예산을 더 통크게 써야 한다는 주장에만 매몰되는 것은 상충하는 다양한 시각과 목표 간의 타협이라는 국가예산의 본질적 성격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하는 점은 경제활력의 제고와 세대 간 상생이라는 목표가 현 시점에서 적절한지, 예산항목들이 이러한 목표를 잘 구현하고 있는지 여부이다.이러한 관점에서 예산안을 평가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현시점에서 한국 경제의 생산능력을 제고하고 세대 간 갈등을 완화하는 것의 중요성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예산안이 강조하고 있는 개별정책들이 상당한 불확실성을 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직업훈련은 구체적인 정상화 경로가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확대가 계속되고 있고 국가직무능력표준 확대는 어느 정도의 기간 내에 성과를 나타낼지를 약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액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상태이다. 청년 창업 지원 역시 보다 정교한 설계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지적돼 온 영역이다.정책의 목표가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그것에 이르는 경로에서 소중한 공적재원이 낭비돼서는 안 된다. 가보지 않은 길이 불확실성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향후 상황 변화에 따라 어떻게 재원을 회수하거나 축소할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계획을 세우는 것 역시 중요한 것이다.재정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삭감하거나 폐지하겠다는 원칙이 금번 예산안에서 천명된 것은 무척이나 다행한 일이나 연구개발(R&D), 국가직무표준, 직업훈련, 복지사업 등 구체적인 영역에서 어떻게 효과성을 검토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한다면 원칙의 천명이 공허할 수밖에 없다.2016년 예산안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총량의 적절성보다 효과성 확보를 위한 정책수단의 준비 여부에 눈길을 돌리는 것이 필요하다. 윤희숙 KDI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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