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백두산 인근서 한중 미술교류전도 계획 중'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아시아미술교류전 '아시아, 아시아를 이야기하다' 특별전의 참여작가들과 양동훈 학예연구사(맨 왼쪽).
[제주 =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제주에 아시아 화가들이 뭉쳤다. 서구 중심의 미술계를 극복하고, 또 다른 중심이 되는 아시아 현대미술의 매력을 선보이고자 모였다. 제주에서 처음 열린 아시아미술교류전이어서 그 의미도 남다르다. 제주를 아시아미술 네트워크 장으로 펼치기 위해 내딛는 발걸음이기도 하다. 지난 7일 '아시아, 아시아를 이야기하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제주현대미술관을 찾았다. 중국과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그리고 한국. 아시아 6개국 20여 명의 작가들이 저마다의 특색있는 작품들을 출품했다. 전시장 두개 층 전관에 비치된 총 70여 점의 그림들 속엔 아시아의 역사, 신화, 자연, 삶과 사회상이 녹아져 있었다. 1층 전시장엔 한 벽면을 모두 채운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분홍빛 물속에서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몸짓을 취한 인물을 담은 다섯 개의 시리즈다. 자신을 조선족이라 소개한 피아오 광시에(45)의 그림들이다. 작가는 "중국 사회의 빠른 변화 속에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혼돈을 표현했다"며 "이상과 전통이 사라져버린 세상을 방향을 잃은 인물로, 붉은색이 퇴색된 분홍빛 배경으로 나타내려했다"고 소개했다. 같은 층에는 거대한 화가의 자화상이 바다 속에 잠긴 형태의 그림이 있다. 베트남 작가 팜 후이 통(34)의 두상 일부는 마치 섬처럼 표현돼 있다. 주변에는 배가 떠다니고, 고래들과 잠수함도 보인다. 평화롭지만 동시에 어수선해 보이는 듯한 그림을 통해 작가는 국가간 분쟁이 영향을 미치는 개인의 삶을 나타내려 했다. 인도 작가 고탐 다스(52)는 신문에 나타난 세계의 여러 전쟁의 모습과 어린 시절 강가에서 어부에게 잡힌 물고기에 대한 기억을 소재로 그래픽 디자인을 활용한 그림을 출품했다. 우리나라 참여작가로는 대지를 상장하는 여체(女體) 실루엣 속에 희노애락을 상징하는 수많은 여체를 복잡한 종교화처럼 그려낸 권영술 작가(58),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을 운치있게 캔버스에 담아낸 고보형 작가(45) 등의 작품들이 소개됐다.
(윗줄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 피아오 광시에 작품 'No.3', 팜 후이 통의 '심해의 초상화', 레슬리 드 차베스의 '아노크 예술가들과 예술가 쿠노', 권영술의 '갈망', 고보형의 '우도가 보이는 풍경', 다디 세티야디의 '다산의 신 데위스리'.
위층으로 올라가면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의 작가 다디 세티야디(38)의 흥미로운 그림이 보인다. 다산의 신 '데위 스리'를 주제로 한 세 작품이 모여 있다. 힌두교 신화의 내용을 서양화의 기법과 혼용해 작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그림들이다. 필리핀의 민중화가 레슬리 드 차베스(37)의 작품도 나와 있다. 작가는 특히 필리핀이 겪어온 식민주의 역사와 종교, 제국주의에 대한 소재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현재 국내 갤러리 중 한 곳인 아라리오미술관 소장품들이 이곳에 선을 보이고 있다. 이 중 '동굴 속 어둠'이란 작품은 밝음을 등진 어둠을 통해 외세 의존적인 자국의 가톨릭에 대한 반감을 은유하고 있다. 작가는 올해 아라리오갤러리와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제주 첫 아시아미술교류전에 작품을 출품한 중국작가들과 커미셔너로 참여한 최안나 큐레이터(맨 왼쪽) 그리고 이번 전시를 관람하러 온 쩡나 중국 독립큐레이터(왼쪽에서 세번째 줄)
◆"제주에 '아시아비엔날레' 만들어지길" = 이날 전시 개막식을 하루 앞두고, 미술관 가까운 한 한옥집에서 조촐한 전야제가 열렸다. 참여 작가들과 함께 이번 전시 기획자들과 국내외 미술인들이 모여들었다. 제주에서 열린 이 전시에 관심을 가지고, 중국 작가들과 함께 온 독립큐레이터 쩡나(여·43)씨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지난 2008년 중국 베이징의 예술촌 '쑹좡' 아트페스티벌을 기획했던 이다. 지난해까진 광둥미술관 기획부의 부주임이었다. 그는 이번 전시를 둘러본 소감을 "아시아의 정체성과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잘 담겨있다. 작품마다 개연성을 잘 살렸다. 감동 받았다"며 "베니스비엔날레(이탈리아)나 카셀 도큐멘타(독일) 등 세계적인 미술전이 많이들 서양에서 열리는데, 이처럼 동양에서 동양작가를 선정해 기획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중국에도 광저우 트리엔날레, 상해·북경 비엔날레가 있다"고 했다. 미술이 아시아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식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예술은 정치와는 다른 부분을 건든다. 애국, 민족주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성찰도 필요하지만, 어떤 사회를 겪은 개인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미술과 더 연관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제주에서 이 같은 아시아미술교류전이 열린데 대해서 쩡나씨는 "제주도는 비자가 필요없어 왕래하기 좋은 조건이다. 이곳에 아시아비엔날레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사진전처럼 장르를 특화해서 제주의 브랜드를 지닌 미술 행사여도 좋을 것 같다. 독일 카셀도 작은 곳이었지만, 지금 세계적인 미술도시가 됐다"고 했다. 제주는 특히 중국 예술가들이 부동산을 구입해 아틀리에를 짓는 등 관심을 많이 가지는 지역이기도 하다. 중국의 유명작가 펑정지에(47)는 지난 2013년 제주현대미술관과 인접한 저지리예술인마을에 자신의 작업장을 짓고 전시도 열었다. 이번 전시 참여 작가 비중 역시 중국작가가 일곱 명으로 가장 많다. 양동훈 제주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아시아미술교류전은 제주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몇 해 전부터 제주에서 아시아비엔날레를 개최하자는 이야기들이 나왔고, 이번 전시가 그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내년에는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미술프로젝트가 추진 중"이라고 했다. 쩡나씨 역시 "백두산은 한국과 중국이 모두 관련이 있는 산이며, 인근엔 중국의 미술관이 있다. 현재 리모델링 중인데 완료되면 한중 전시가 준비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가 제주도를 아시아 미술 교류의 장으로 키워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다. 김연숙 제주도립미술관장(여·53)은 "제주의 아시아미술전은 서구의 눈이 아닌 우리들의 눈으로 아시아의 문화와 역사를 주체적으로 소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제주도의 문화예술 역시 이를 통해 더욱 확장되길 소망한다"고 했다. 제주=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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