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서 데이트도 미룹니다'…도시인들의 폭염나기 新 풍속도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원다라 기자] "날씨가 너무 더우니 낮 시간대에는 청계천에 나오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보시는 것 처럼 거리가 텅텅 비어있어요." 전국적으로 35도 안팎의 '가마솥 더위'가 이어지면서 도시인들의 생활도 달라지고 있다. 더위를 피해 지하철에서 '쪽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도 있는 한편, 미술관·영화관·카페를 전전하며 자체 '방콕'행을 선택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수온주가 섭씨 34도를 가리킨 6일 오후 서울시 중구 청계천변. 분수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만, 여느 여름처럼 물놀이를 즐기는 어린이들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다만 청계천 모전교 아래 그늘에만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하지만 청계천을 찾은 시민들도 초유의 더위에 혀를 내두르긴 마찬가지였다.각각 5살, 7살난 딸아이를 데리고 나온 주부 엄정아(34·여)씨는 "조금 시원할까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는데 발을 담그고 있을 때만 잠깐 시원할 뿐 너무나 덥다"며 "다시 어딘가 시원한 곳으로 들어갈 생각이다"라고 말했다.이렇듯 거리에서 사라진 도시인들이 찾는 '오아시스'는 카페나 상점이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더위를 식힐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엄마들 사이에서는 영화관·1000원숍·카페가 하나의 '피서코스'로 자리잡아가고 있다.이날 오전에만 롯데시네마, 다이소를 거쳐 스타벅스에 들어선 최영현(35·여)씨는 "집에 있기도 답답하고, 에어컨을 틀자니 전기세가 걱정돼 며칠째 같은 코스를 반복하고 있다"며 "요새 엄마들 사이에서는 이런 코스가 인기"라고 귀뜸했다.실제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8월1일~5일 닷새간 전국의 일평균 영화관람객 수는 136만2000여명으로, 지난 7월 일평균 관람객(75만5000여명)의 두 배 수준으로 늘기도 했다. 폭염에 지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방콕'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폭염은 도시인들의 연애풍속을 바꿔놓기도 한다. 이날 오후 퇴근길에 만난 박모(29)씨와 이모(28·여)씨 커플은 데이트 횟수와 시간을 모두 줄였다. 이 커플은 "요새는 날씨가 너무 더워 데이트를 하러 나가면 고생만 한다"며 "퇴근길에 만나 10분 정도 지하철을 함께 타고가다 헤어지거나, 잠깐 내려서 짧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요새 데이트의 전부"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PC방 등 '실속형 피서지'를 찾는 연인들도 있다. 이날 오후 1시간 당 500원의 요금을 받고 있는 숙대입구역 인근 PC방은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여자친구와 함께 이 PC방을 찾은 대학생 임모(24)씨는 "보통은 바깥에서 데이트를 하지만, 요새는 너무 더워서 그러지도 못한다"며 "시원하면서도 저렴한 곳을 찾다보니 이 PC방을 찾게됐다"고 말했다.연이은 '열대야(熱帶夜·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밤)'로 도시인의 밤문화도 크게 달라졌다. 이전처럼 청계천, 한강 둔치 등 수변공간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영화관·미술관 등 밤중에도 문을 여는 실내공간을 찾는 경우도 늘었기 때문이다.이날 오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난 대학생 성재영(23·여)씨는 "집에서도 땀이 줄줄 흐를정도로 덥다보니 오늘은 작심하고 시원한 곳을 찾아다니기로 했다"며 "여기서 시간을 보낸 뒤 저녁에는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 갔다가, 밤에는 심야영화를 볼 계획이다. 내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하루종일 있을 예정"이라고 말했다.실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따르면 지난 7월22일~28일 1만8114명에 불과했던 관객 수는 이주(7월29일~8월4일)들어 2만8989명으로 1만명 넘게 늘었다. 야간전시 탓에 시민들이 몰려서다.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지난달 29일부터 '예술피서' 개념을 도입해 야간개장을 진행하고 있다"며 "무더운 날씨 속에 시민들이 미술관을 찾게되면서 관람객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유제훈·원다라 기자 kalamal@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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