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형제간 아닌 부자간 갈등이었나

휠체어에 탄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28일 저녁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롯데그룹 '왕자의 난'이 경영권을 놓고 벌이는 형제간의 다툼에서 신격호-신동빈 부자의 분쟁이라는 관측이 제기측고 있다. 롯데그룹의 경영권 문제를 놓고 평소 보이지 않는 갈등이 누적돼 오다 중국사업 투자 보고 누락으로 폭발했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형제간 싸움에서 부자간 분쟁으로 급선회한데는 그 동안 이번 사태의 중대 변수로 지목됐던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의중이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후계자로 한다는 내용의 지시서와 육성이 공개되면서 부터다.KBS는 지난 31일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제공한 파일이라며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신 총괄회장의 목소리가 담긴 육성 파일을 공개했다. 공개된 육성에서 신 총괄회장은 "츠쿠다(츠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냐"고 묻자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사장을 맡고 있다"고 답했다. 이에 신 총괄 회장은 "그만두게 했잖아, 강제로 그만둬야지"라고 말했다.그는 이어 "아키오(신동빈 회장)도 그만두게 했잖아"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신 전 부회장은 "아직 안 그만뒀습니다"고 답했다. 이에 신 총괄회장은 "너는 가만히 있을 것이냐"고 말했다. 이는 신 전 부회장이 앞서 인터뷰를 통해 공개했던 신 회장의 해임은 아버지의 결정이라는 말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날 육성은 지난달 30일 오후 2시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집무실이 있는 롯데호텔 34층에서 주위를 물리친 채 둘만 대화한 내용이다. 또 31일 한국으로 전격 입국한 신 총괄회장의 셋째 동생인 신선호 일본 산사스 식품회사 사장은 '신격호의 후계자는 신동주'라고 공언했다. 신 사장은 전일 부친의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신 전 부회장 자택에 들어서면서 취재진에 "(신 총괄회장이) 동주가 경영권을 가져가는 것에 대한 의견이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차남에게 경영권을 탈취당한 것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간의 갈등의 반목이 깊음을 의미하는 발언이다. 앞서 신 전 부회장은 같은날 KBS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한국 롯데그룹 회장으로 임명하고, 차남을 후계자로 승인한 사실이 없다는 내용의 7월17일자 문서를 공개했다. 지난 15일 신동빈 회장이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 이틀만에 만들어진 문서다. 한국 롯데그룹은 즉각 반박 자료를 내고 "경영권과 전혀 관련 없는 분들에 의해 차단된 가운데 만들어진 녹취라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반발했다. 이어 "신격호 총괄회장의 의중이 경영 전반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도 상법상 원칙을 벗어난 의사결정까지 인정될 수는 없다고"고 덧붙였다.

SBS 드라마 황금제국의 한 장면

일각에서는 신 회장의 전략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정서상 아들이 경영권을 갖기 위해 아버지를 퇴진시킨다거나 아버지의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입장의 여론전에 대해 꺼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은 신 전 부회장의 인터뷰와 지시서 등이 공개되자 공식 입장을 통해 고령인 신 총괄회장의 판단력이 의심스러우며 이를 장남이 악용하고 있다고 밝혔다.이를 놓고 그룹이 공식입장을 통해 창업주인 신 총괄회장의 판단력을 언급한다는 것은 신 회장의 지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즉, 신 회장이 결정하지 않는 한 실무진에서 이를 공식 입장으로 내놓을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의 육성에서는 롯데의 주장과는 달리 비교적 건강하고 단호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갈등이 누적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사업을 중시하는 신 총괄회장과 달리 신 회장은 기존 사업만으론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금융사 인수 등에 더 주력해왔기 때문이다. 이를 놓고 신 총괄회장은 종종 불만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일일이 사업이나 인사 등과 같은 세세한 것까지 보고해야 되는 시스템 때문에 신 회장이 경영하는데 한계를 느꼈을 것이라는 후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신 총괄회장의 육성 공개를 통해 이번 분쟁이 형과 동생의 경영권 싸움이 아닌 부자간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됐다"며 "신 회장이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게 되는 것으로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전했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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