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덮친 메르스…정부, '컨틴전시 플랜' 검토

[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오종탁 기자] 3일 저녁 이태원 거리는 평소와는 달리 한산했다. 평소 맛집으로 알려져 줄을 서지 않고는 입장하기 어려웠던 A식당에는 식사시간인데도 몇 테이블이 비어 있었다. 근처 잡화를 파는 가게에서는 직원들이 마스크를 끼고 손님을 맞았다. 평소 밤 10시를 넘어서면 20~30분을 기다려야 했던 택시도 이날은 쉽게 잡혔다.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B씨는 "이번 주 회사 회식이 취소되고 다음 주말 워크숍도 무기한 미뤄졌다"며 "개인적인 주말 약속도 연기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한국 내수시장의 숨통을 조르고 있다. 학교들이 잇따라 수학여행을 취소하고 기업들은 수련회·워크숍 등 행사를 연기하고 나섰다. 특히 외국인관광객들의 한국 여행 취소가 늘어나면서 여행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올들어 미약하지만 지속적인 개선세를 보였던 내수는 메르스의 습격으로 다시 빨간 불이 켜졌다.엔저로 심각한 부진에 빠진 수출과 함께 내수 회복에도 발목이 잡히면 한국 경제의 두 엔진이 모두 꺼져버리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메르스 확산을 조기에 수습하지 못하면 올해 경제성장률은 2%대로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는 메르스 사태 추이에 따라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성장률 2%대로 추락하나= 지난달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2분기 경제성장률을 2.8%로 내다보면서 민간소비가 2.8%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1분기(1.5%)에 비해 소비심리가 크게 회복될 것을 반영한 것이었다.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여러 차례 "2분기에는 기저효과와 자산시장 활성화로 소비가 살아날 것"이라며 기대를 높였다. 4월보다는 5월, 5월보다는 6월에 소비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하지만 5월 말부터 시작된 메르스 공포로 내수시장은 겨울로 돌아갔다. 메르스 확산 이후 가계와 기업의 경제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관광산업도 타격을 입고 있다. 정부가 메르스 차단을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앞으로 최소한 2~3주일 이상은 경제주체들이 메르스 공포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수출 부진도 예상보다 심각하다. 5월 수출은 2009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인 전년 동월 대비 10.9% 감소했다. 수출부진이 엔저와 중국의 추격 등에 따른 것이어서 단기간에 개선될 가능성도 많지 않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일 민간소비 부진과 원화 강세, 중국에 대한 수출 감소 등을 이유로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3.8%에서 3.0%로 낮췄다. 앞서 KDI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0%로 하향 조정하면서 구조개혁 정책이 원활하게 추진되고 기준금리 추가 인하와 세수목표 달성 등을 전제조건으로 달았다. 이들 전제가 실현되지 않을 경우 우리 경제성장률은 2%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경고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현 상황에서 특단의 조치 없이 성장률 3%대를 달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정부, '컨틴전시 플랜' 검토= 정부 고위관계자는 4일 "이번 주말이 1차 고비"라며 "메르스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지 않도록 강도높은 격리조치 등을 펼치고 있지만 상황이 악화될 경우에 대비해 기재부를 중심으로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기재부 관계자는 "아직은 관광업계 외에는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있지만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상황에 맞게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메르스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도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소비·투자심리가 과도하게 위축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불안심리를 최소화하는 게 지금으로선 바람직하다"면서 "소비·투자심리 위축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금리 인하와 추경 편성 등에 대해서는 메르스 사태와 경제여건 전반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전봉걸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준금리 인하, 추경 편성 등 지금 상황에서 급하게 결정하긴 어려울 것 같다"면서 "소비가 위축될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세종=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세종=오종탁 기자 tak@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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