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원이 바뀌어야 기업 변화…일 얘기 아닌 마음열기 대화
이원태 수협은행장
[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이원태 수협은행장은 거시경제에 강하다는 옛 경제기획원 출신이다. 경험을 살려 수협의 커다란 경영 틀을 이리저리 재편할 것만 같던 그가 취임 직후 실시한 건 뜻밖에도 명함 디자인 교체였다. "명함에 이것저것 문구들이 많아 복잡하더라고요. 모두 정리하고 '수협은행' 하나만 남겨 뒀습니다." 세상 일은 복잡하지만 이를 반영하는 숫자는 간결하다. 경제지표를 나타내는 숫자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시장은 요동친다. 30년 넘게 경제관료로 생활하며 숫자와 씨름해 온 이 행장이다. 간단한 명함 디자인 교체부터 시작해 수협을 뿌리째 바꿔보고자 한 건 아니었을까. 그의 답변을 27일 서울 송파구 수협 건물에 있는 행장실에서 들어 봤다. "예금보험공사에 재직할 때 수협을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생각은 '모든 국민이 거래하고 싶어 하는 그런 은행으로 만들면 참 좋겠다'는 것이었죠. 제가 그 역할을 맡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 행장은 2010년부터 3년간 예보 부사장을 지냈다. 자연스레 시중 금융사들을 다양하게 접할 길이 있었다. 그가 접한 수협은 특별한 곳이었다. 어업인 16만명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120여개 점포 중 70%가 수도권에 있었다. 수협중앙회에 속해 있지만 조만간 분리돼 독립 법인화를 앞두고 있었다. 이래저래 변화의 길 위에 서 있었고 단순한 해양전문은행을 넘어 고객 다변화를 꾀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지금도 수협을 두고 어업인들만이 이용하는 은행으로 인식하곤 합니다. 그렇게 두기에는 수협이 가진 가능성이 너무 큽니다. 보다 많은 고객이 수협을 이용하게끔 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가 취임 3개월 만인 2013년 7월 내놓은 '2017 중장기 비전'에도 그의 이런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금리ㆍ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며 은행권의 수익은 날이 갈수록 말라가고 있다. 바젤III 도입 등은 은행들에게 새로운 변화를 강요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수협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행장은 수협 직원들을 주목했다. 수협이 변하려면 구성원이 변해야 한다. 어느 조직이든 조직원의 변화 여부는 리더에게 달려있기 마련이다. 이 행장이 수협 직원들 속으로 뛰어든 이유다. 가장 먼저 시작한 건 '런치 위드 CEO(lunch with CEO)' 시간이다. 매주 금요일 부서 실무자들과 점심을 함께 하며 소통의 시간을 갖는다. 이 행장 자신의 의견도 말하고 직원들의 생각도 가감 없이 들어보는 시간이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직원들도 밤새 준비해 이야깃거리를 가져오는 이 행장을 보고는 마음을 열었다. 지난해 12월까지 가진 식사 자리만 40여 차례다. "밥 먹으면서 업무 얘기하면 소화도 잘 안 되잖아요. 옛날 고사도 얘기하고 최근 이슈도 언급하고 했습니다. 메뉴요? 직원들이 좋아해서인지 주로 스파게티 집을 자주 갔던 것 같네요."
이원태 수협은행장
행장실 직속으로 '직원만족센터'를 개설한 것도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보겠다는 시도다. 성과도 있었다. 직원들이 업무효율성 향상을 위해 소위 '보직예고제' 도입을 희망했고 이 행장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보직예고제는 보직 명령 시 차기 보직과 예정일을 함께 알려주는 제도다. 새로운 보직에 대한 준비시간을 보장해 줘 업무 이해도를 높이고 적응기간을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아무래도 행장이 직접 나서서 '이럽시다' 하면 동참이 잘 안됩니다. 직원들이 믿고 따라와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반응이 조금씩 오면 거기에 또 답변을 해주고 그러는 거죠." 그가 취임한 후 직원들과 밥만 맛있게 먹은 건 아니다. 그는 수협의 수익성 개선에도 신경 썼다. 수익 확보를 위해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조직개편을 단행한 것. 상반기에는 마케팅 중심의 본부조직을 개편했고, 하반기에는 현장 마케팅 인력 확보에 주력했다. 본부 지점장급 인력을 영업현장으로 배치해 영업 노하우가 자연스레 전파되도록 했다. "바젤 III에 대비하려면 자본도 필요하고 체력을 키워야 합니다. 미리미리 준비하는 거죠. 앞으로 보다 영업을 강화하고 확대할 생각입니다." 그가 신경 쓰는 바젤III는 은행 건전성 강화를 위한 국제협약이다. 협동조합인 수협은 내년 말까지 도입을 유예 받았다. 그 전까지는 수협중앙회 분리와 자본 확충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이 행장이 수협중앙회 사업구조개편을 골자로 하는 수협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최대 현안으로 꼽는 이유다. 수협법 개정안은 2012년 처음 정부 입법됐지만 이후 정부개편 등을 이유로 답보 상태를 이어왔다. 다행히 최근 취임한 해양수산부 장관과 수협중앙회장이 수협법 개정안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수협 또한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 관련 부처를 상대로 설명과 협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행장은 "하반기에는 개정안이 통과돼야 내년도 사업구조개편 관련 예산안을 확보할 수 있다"며 "우리로선 통과되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이 행장은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친숙하다. 네이버 밴드와 페이스북은 그가 즐겨 사용하는 SNS 어플이다. 이곳을 통해 수협 직원들과 의견을 나눈다. 이런 그인 만큼 핀테크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송금과 결제만 하는 핀테크라면 크게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저희도 스마트금융팀을 통해 관련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이 출자할 수 있고, 어떤 서비스로 확대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 합니다." 경제관료 출신인 이 행장은 현 금융당국의 금융개혁을 긍정적으로 봤다. 이미 이 행장 스스로가 금융사 안에서 금융시장의 변화를 몸소 느끼고 있던 터다. 그는 "금융개혁은 규제완화를 넘어서 금융산업 육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가야 한다"며 "남은 임기 2년 동안 나 역시 수협의 발전을 위해 힘써보려 한다"고 말했다. ■ 이원태 수협은행장은? 이 행장은 1953년 대구에서 출생해 경북고와 경북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영국 서섹스대 대학원에서 국제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0년 행정고시 24회 ▲1981년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 재정경제원 심사평가국 사무관 ▲1995년 재경원 대외경제국, 벨기에 대사관 겸 EU 대표부 재경관 ▲2001년 국무총리실 금융정책과장 ▲2002년 재정경제부 관세협력과장 ▲2006년 재정경제부 관세제도과장 ▲2008년 기획재정부 정책기획관ㆍ관세정책관 ▲2010년 예금보험공사 부사장 ▲2013년~ 수협은행장이승종 기자 hanaru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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