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회장

백우진 디지털뉴스룸 선임기자

그는 대기업 회장이다. 회사 구내식당에 종종 들른다. 구내식당으로 가는 복도에서 먼저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직원들과 마주친다. 여느 대기업이라면 직원들이 회장이 지나가는 길을 필요한 만큼보다 더 터준다. 그래서 마치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것처럼 길이 열린다.  이 회사 직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직원들은 그를 스스럼없이 대한다. 신입사원들도 그를 어려워하지 않는다. 다들 인사는 한다. 허리를 꺾어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는 사원은 눈에 띄지 않는다.  회장을 찾아와 그와 함께 구내식당에 들른 방문객들은 그걸 보고 깜짝 놀란다. "어떻게 이 회사는 회장을 보고 스스럼없이 웃으면서 지나가느냐고" 묻는다. 그는 이런 반응이 나오면 껄껄 웃으며 흐뭇해한다. "우리 직원들이 고맙다"고 말한다.  회장이 지시해서 이 회사 직원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가 먼저 직위의 층을 허물고 내려와 직원들에게 다가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많은 사원들과 친구가 됐고 편하게 얘기를 나눴다. 번개를 쳐 모인 젊은 사원들과 술을 마셨고 함께 영화를 봤다.  그는 왜 대기업 회장으로서 받을 수 있는 예우를 스스로 내려놓았나. 배려하는 마음에서다. 업무와 직접 관련이 있지 않은 일에서 자신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회장이 된 이후 출근하면서 겪은 일을 예로 들었다. 사옥 출입문은 이중으로 설치됐다. 냉난방 에너지를 절감하기 위해서다. 그가 건물에 도착하니 경비원이 미리 이중문을 모두 열어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첫 사흘간 건물에 들어서면서 문을 닫았다. 이중문을 열어두면 찬 바람이 몰아쳐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이 춥게 되니 그리하지 말라는 뜻을 행동으로 보인 것이었다. 경비원은 눈치를 채지 못했고 그는 결국 말을 꺼냈다. "내가 열고 들어가도 힘들지 않아요. 바깥 공기 들어오지 않게 문 닫아놓으세요." 그는 주위 사람들 얘기를 많이 듣는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하기 위해서다. 그는 "회장 자리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생활이 규정된다"며 "사소한 것도 내가 회장이니까 늘 그렇게 대접받아야 하는가보다 하고 살다보면 둔감해진다"고 말한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드라마 속의 회장처럼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야말로 드라마에나 등장할 법한 회장이다. 그가 누구인지는 '가톨릭 다이제스트' 4월호를 보면 알 수 있다. 백우진 디지털뉴스룸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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