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부정선거 올해로 55주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
[아시아경제 박준용 기자] "자유당 후보가 기필코 당선토록 하라.(1959년 내무부장관 최인규)" "야당이 되지 않는 소리 하면 강에 쳐박아야지.(2012년 국정원장 원세훈)"1960년 3월 15일, 그리고 2012년 12월19일. 이날의 결과를 만들려 하던 두 인물의 말은 다르지 않았다. 52년의 터울이지만 두 날을 위해 국가기관이 한 조직적 '선거개입'도 같았다. ◆3·15부정선거VS국정원 댓글 대선 개입제4대 대통령과 부통령을 뽑았던 '3·15부정선거'는 정권을 쥔 자유당이 네달 전부터 준비한 결과물이었다. 자유당은 비밀리에 선거 대책을 세우며 야당후보가 인기를 끌자 선거시기를 앞당겼다. 내무부 장관이던 최인규는 "모든 공무원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하여야 한다. 차기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입후보자가 기필코 당선토록 선거운동을 하라"며 독려했다. 치안총감 이강학, 국회부의장 한희석, 내무부 차관 이성우 등이 이를 따랐다. 이들은 일선 경찰서장을 연고지 중심으로 재배치하고 전국 시·읍·면·동 단위로 공무원친목회를 조직했다. 정치깡패들을 동원해 야당 당원을 습격하기도 했다. 선거 날에는 전출자·자연기권자 매수, 기권자들의 표 활용, 3인조 9인조를 이용한 공개투표, 완장부대 동원, 민주당 참관인 매수 등 부정행위를 했다.52년 뒤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2009년 국정원장이 된 원세훈은 취임한 뒤인 2009년 3월부터 대북방송 차단업무를 하던 심리전국을 확대했다. 대선이 있던 2012년에는 사이버심리전 수행팀이 4배로 늘 정도였다. 원세훈은 "종북좌파 세력들이 점령하다시피 한 인터넷 자체를 청소해야 한다“거나 "젊은층 우군화 강화 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자"고 지시했다. 직원들은 이에 충실히 따랐다. 오늘의 유머, 보배 드림 등 인기 커뮤니티에 지속적으로 댓글을 다는가 하면, 트위터로 수십~수백만개의 트윗과 리트윗으로 여론 조작을 시도했다. 원 전 원장은 '이슈와 논지'와 ‘원장님 지시 강조사항’등을 하달해 이를 이끌었다. 국군 사이버 사령부도 대선 전에 연제욱(소장)·옥도경(준장)이 주축이 돼 댓글공작을 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대선개입' 처벌, 희비 갈렸을까?15일로 55년이 된 '3·15부정선거'. 이 사건과 '국정원 댓글개입' 선거사범의 처벌은 어떻게 달랐을까. 최인규는 이후 이뤄진 검찰 조사에서 "내무장관 하에 있는 전 공무원을 일치단결시켜 선거운동을 하고 선거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지령대로 하지 않는 경우나 자유당 입후보자의 득표수가 적을 경우 사표를 제출받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1심판결에서 관련자들은 검찰 측 증거불충분과 공소유지 미비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거나 예상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 받았다.
▲ 3.15부정선거로 촉발된 4.19 혁명 당시의 모습(출처: 위키피디아)
이에 1960년 11월 국회는 헌법개정을 기초로 '3·15부정선거관련자 처벌을 위한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등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 법으로 탄생한 특별검찰부는 재수사에 들어갔다. 특별재판소는 책임자 최인규와 이강학, 이성우에게 각각 사형과 징역15년,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5·16군사정변 이후 혁명판소가 생겨 최종판결은 또 달라졌다. 혁명재판소는 최인규는 최인규와 한희석에게 사형, 이강학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또 부정선거와 관련된 폭력범인 임화수와 이정재, 유지광은 사형을 언도했다. 반면 '국정원 댓글 대선 개입' 사범에 대한 재판은 현재진행형이다. 원세훈은 휘하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정치개입을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1심은 국정원법 위반혐의를 인정해 그에게 징역 2년6월·집행유예 4년·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긴 하지만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다. 이에 각계에서 “지록위마 판결”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올해 항소심은 원세훈에게 징역 3년의 실형·자격정지 3년을 내려 처벌 수위를 높였다. 항소심 선고 날 원세훈은 법정구속됐다. 형량이 세진 이유는 재판부가 국정원 심리전단 안보5팀 직원의 이메일에서 발견된 ‘이슈와 논지’가 원세훈의 지시라는 증거를 인정하면서다. 재판부는 또 선거글(선거관련 글)'과 '정치글(정치관련 글)'로 나눈 뒤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 중 선거글이 8월20일 이후 현저히 증가했다"면서 "이 시기 전후로 나누어 볼 때 선거글의 상대적 비중과 절대적 규모,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고 볼 정황이 확인됐다"면서 대선 개입을 인정했다. 이종명(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정보국장)에게는 대해서도 징역1년·자격정지1년, 징역1년6월·자격정지1년6월과 집행유예 2년가 선고됐다. 이들은 상고한 상황이다. 댓글개입에 연루된 군인들은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의 1심 공판에서 선고유예와 집행유예를 받았다. ◆전문가들 "한국 민주화의 역사는 대선개입과 투쟁의 역사"전문가들은 '3·15 부정선거' 55년을 맞아 국가의 조직적 선거개입은 그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지적한다. 박주민 변호사는 "3·15 부정선거는 국가가 개입했다는 점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다. 반면 지난 대선의 댓글 개입은 은밀한 방식으로 민간인 위장을 했다"면서 "이 두 사건의 본질은 같다. 관이 선거와 개입해서 영향을 미치려 했다. 55년 뒤에도 과연 뭐가 달라졌나. 민주주의가 심화하고 발전됐나하는 의문이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55년이 지난 지금도 국가기관의 개입이 척결되지는 못했다. 3공화국, 4공화국 때도 관권선거는 계속 있었다. 1987년 체제 선거법 개정을 했는데, 개인에 의한 부정선거는 척결이 돼 간다"면서 “하지만 아직 구조적 부정선거는 여전히 남아있다. 이번 대선개입이 대표적이다. 과거 1공화국 3공화국 말기, 4공화국 때와 다르지 않다. 이는 우리나라 민주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민주화를 위해서 이 폐단과 단호하게 결별해야한다고 말한다. 한 교수는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는 부정선거와의 투쟁"이라면서 "정치권이 이를 각성하고 단호하게 폐단과 결별하지 않는다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도 "민주주의를 이루려면 원세훈 판결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이 이에 대한 공식적 사과를 한다든지 국정원을 개혁한다든지 그런 개혁 작업들이 이뤄지고 있어야 한다"면서 "국민들도 반응을 하고 정치권에서도 책임을 지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자료=국가기록원, 한국학중앙연구원)박준용 기자 juneyong@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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