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고, 통역하고, 따로 만들고' SPA 10년, 명동 상권 생존법

유니클로 진입 후 SPA 브랜드 격전지로…상권 파악 실패하면 '퇴출'

명동은 SPA 브랜드 심장…명동서 뜨면 '매출 대박'명동 프로모션에 전사(全社) 집중…전용 제품도 출시'남는 물건'도 명동 오면 완판

28일 명동 포에버21매장에서 중국인들이 9900원 데님 상품을 구경하고 있다.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최서연 기자] # 지난 28일 명동 스파오(SPAO) 매장. 한 베트남 여성이 양손 가득 물건을 고르고도 쇼핑을 멈추지 못한다. 봄 신상품인 운동화와 백팩, 셔츠, 점퍼 등 다양한 제품을 골랐을 뿐 아니라 같은 제품도 여러벌 담았다. 제품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 이 여성과 설명하는 직원간 대화는 서로 아는사이인 듯 자연스럽다. 매장 직원은 "주기적으로 매장을 찾아 200만원어치 이상씩 구매하는 VIP"라고 귀띔했다. ## 같은날 명동 유니클로 매장. 단체 관광객으로 보이는 한 중국인 남성이 캐시미어 가디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컬러별로 몸에 걸쳐보거나 동행인에게 어떤지 의견을 묻기도 한다. 곧 히트텍을 할인한다는 중국어 방송이 나오자, 가디건 두어개를 집어들고 해당 진열대로 발길을 옮긴다. 매장 직원은 "중국어 방송은 명동 매장에서만 지원된다"고 소개했다. 서울 명동이 글로벌 SPA 브랜드 중심지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2000년대 초까지만해도 중저가 로드샵과 좌판 매장으로 요약되던 이 곳은, 이제 세계적인 SPA 브랜드들의 전쟁터가 됐다. 한 때는 '화장품 거리'로 정체성이 바뀌는 듯 했지만, 매출을 기준으로는 여전히 '패션 명동'의 자리를 확고히 지키는 모습이다. 유니클로를 시작으로 국내 패션시장이 SPA 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된 지 10년여 만이다. 가장 큰 특징은 명동이 SPA 브랜드의 '쇼윈도(show windowㆍ상품 진열창)'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대부분 브랜드들이 신제품의 대량 생산에 앞서 명동 매장에서의 반응에 따라 초도 물량을 결정하고, 다음 디자인에도 이를 반영한다. 젊은 외국인 쇼핑객들이 많이 몰리는 지역적 특징에 맞게 이들을 위한 명동 전용 제품도 나온다. 이 같은 전략은 브랜드 자체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매출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 명동 매장이 외국인 쇼핑객들의 유입 창구가 된 셈이다.

28일 명동 포에버21매장에서 중국인들이 9900원 데님 상품을 구경하고 있다.

이랜드가 운영하는 SPA브랜드 스파오는 실제로 명동 매장용 제품을 별도로 제작한다. 기본적으로 단조롭고 단순한 제품을 표방하지만,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서다. 매장에도 심플한 디자인과 색상의 야구점퍼와 화려한 패치를 붙인 야구점퍼가 함께 진열돼 있다. 패치를 붙인 점퍼는 명동매장에서만 판매중이다. 김윤동 스파오 명동지점장은 "내수용으로는 아무 무늬가 없는 심플하고 모던한 색과 디자인의 제품을 마련하는 동시에, 이 제품에 추가적인 자수나 패치를 달아 중국인 전용 제품을 출시한다"면서 "화려한 디자인과 독특한 색감으로 다른 매장에서는 인기가 덜 해 재고 처리됐던 제품이 명동점에서 소화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명동에 자리잡은지 4년차인 에잇세컨즈 매장 역시 비슷한 풍경이다. 외국인을 위한 '맞춤형' 행사가 종종 진행된다. 최근 매장에서는 일정금액 이상을 구매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뽑기를 진행, 경품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하고있다. 1등을 하면 금을 받을 수 있는데, 황금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반응이 뜨겁다. 친구들과 쇼핑여행을 왔다는 왕시엔아이(26세·여)씨는 "이벤트 안내를 받고 매장에 들어왔는데 비쌀줄 알았더니 티셔츠나 원피스 제품이 100위안도 안해 놀랐다"면서 "생각보다 저렴해서 코트 제품까지 고르고 있다"고 말했다.

에잇세컨즈 명동점의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김정은 과장은 "브랜드 런칭 초기에는 테마여행을 즐기는 일본인들 덕에 가로수길 매장의 매출이 빠르게 성장했지만, 중국인 고객이 많아지면서 명동 매장이 전년 대비 15%의 신장율을 보이는 등 선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이 매장 역시 오픈 초기 중국인 매출 비중이 5% 내외였지만 2013년 10% 초반으로 늘었고, 현재 30%를 눈앞에 두고 있다"면서 "주요 이벤트는 명동에서 대부분 진행하며, 전사가 명동을 고려해 프로모션을 진행한다"고 소개했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SPA 브랜드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끌고있는 유니클로는 명동점에서만 외국어 안내방송을 튼다. 중국어나 영어 등 외국어가 가능한 직원을 곳곳에 배치해 쇼핑 편의를 돕는다. 이들은 이름표에 자신의 이름과 함께 가능한 통역서비스 내용을 적어뒀다. 매장 관계자는 "진행중인 프로모션이나 할인 행사 등에 대한 외국어 안내가 명동 매장에서 지원된다"면서 "다른 지역 매장은 이 같은 서비스가 없다"고 밝혔다. 이밖에 글로벌 SPA 브랜드인 자라, H&M, 포에버21 등은 각각 커리어우먼, 10~20대, 개성과 유행을 중요시하는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주력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자라의 경우 SPA 브랜드 가운데서는 중고가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그만큼 높은 제품력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H&M은 베이비 라인과 청장년층 등 넓은 소비자층을 아우를 뿐 아니라 임산부를 위한 전용 의류나 이너웨어 등도 취급해 눈길을 끌고 있다. 포에버21의 경우 워싱 강한 청바지, 크롭톱 등 개성이 강한 아이템과 메이크업브러쉬 등 뷰티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다양한 브랜드가 가격과 서비스 경쟁에 나서면서 브랜드별 강점을 파악해 쇼핑하는 스마트 요우커들도 늘고있다. 한국에서 유학중이라는 양쯔위엔(26세·여)씨는 "친구들이 놀러와 쇼핑을 돕고 있다"면서 "가격은 할인을 많이 하는 H&M 매장과 SPAO가 가장 저렴하다고 소개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생활을 하는 친구에게는 자라와 유니클로 매장을, 남자친구에게 줄 청바지 선물을 고르는 친구에겐 스파오를 권했다"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명동 상권의 특징이나 외국인 관광객들의 기호를 맞추지 못한 브랜드는 '특수'를 누리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난 2001년 국내에 가장 먼저 SPA 개념을 도입했던 스페인의 '망고(MANGO)'는 부진한 실적에 사업을 접었다가 2009년 제일모직과 손잡고 진출한 바 있다. 제일모직이 에잇세컨즈를 출범시키면서 결별, 다른 SPA 브랜드들이 다양한 컨셉과 디자인으로 성장하는 사이 정체된 흐름을 보이면서 지난해 명동에서 퇴장했다. '디자이너 SPA 브랜드'를 표방한 캐나다의 SPA 브랜드 조프레시 명동매장도 부진한 모습이다. 이월상품을 50% 할인해 반값에 팔고, 일부 신상품도 할인중이지만 매장은 텅 비어있다. 제품 디자인과 퀄리티도 나쁘지 않지만, 간판이나 제품 모델 중심의 마케팅이 주효한 명동 상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한 주변 상인은 "한국인들은 가끔 사는 것 같지만, 외국인들은 매장에 아예 들어가지 않는다"면서 "명동 상권에서는 품질 뿐 아니라 가격경쟁력과 마케팅으로 승부해야 하는데, 지나치게 점잖은 분위기가 쇼핑객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업계 관계자는 "강남 가로수길이 대세라고들 하지만, 여전히 명동이 쇼핑의 중심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서 "명동매장이 매출과 마케팅, 상징적 측면에서 각 브랜드들에게 가장 중요한 곳으로 평가받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요우커 등 외국인 관광객들의 증가세가 꺾이지 않는 한 이 같은 위상을 지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최서연 기자 christine89@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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