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CCTV 별곡

희(喜) 노인은 등이 굽었다. 리어카는 녹이 슬었다. 겨울 삭풍이 매서운 도심의 사거리, 폐지를 실은 리어카가 로시난테처럼 헉헉거린다. 리어카 손잡이를 힘겹게 쥔 노인 곁을 젊은 경찰이 지키고 그 뒤를 경찰차가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따른다. 몇 시간 전 경찰은 치매 노인이 길을 헤매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그리곤 노인의 집까지 리어카를 끌어다 주는 아름다운 동행을 실천했다.(몇 해 전 대구에서 찍힌 자동차 블랙박스 영상) 노(怒) 종업원들이 노닥거리느라 주문 처리가 더디자 60대 한인이 점잖게 항의한다. 그런데 종업원의 반응이 뜨악스럽다. "당신 같은 사람에게 커피를 팔지 않는다"고 소리를 지르더니 급기야 빗자루로 폭행을 가한다. 그 모습을 다른 종업원들은 낄낄거리며 구경한다.(작년 2월 뉴욕 맥도널드 CCTV) 애(哀) 몇 달 뒤면 아빠가 되는 기쁨을 뺑소니 차량이 덮쳤다. 젊은 남편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임신한 아내에게 사주려던 크림빵은 차가운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사고 차량이 근처 CCTV에 찍히긴 했지만 화질이 좋지 않아 수사가 더디자 네티즌 수사대들이 나섰다.(1월 초 청주시 CCTV) 락(樂) 영국의 어느 나이트클럽서 벌어진 1대 10의 싸움. 10은 어깨들이다. 1은 복싱선수다. 어깨들이 선수의 아내를 희롱한 것이 화근이었다. 선수는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아댔고 그때마다 어깨들은 낙엽처럼 흩어졌다. 정의의 승리이자 사랑의 어퍼컷이다.(작년 11월 영국 나이트클럽 CCTV) CCTV(폐쇄회로텔레비전)에 비친 우리 삶은 과연 희로애락이다. 그 모습에 대중은 격하게 반응한다. 치매 노인을 도운 경찰의 선행에는 박수를 보내고, 한인 폭행에는 다같이 분노하면서, 크림빵 뺑소니를 안타깝게 여기며, 정의의 주먹에는 쌍수 들어 환호하는 것이다. 얼마 전 여론을 들끓게 한 어린이집 유아 폭행 사건도 CCTV 영상으로 전말이 드러났고, 잇따르는 흉악 사건들도 CCTV에 꼬리가 잡히곤 한다. 전국의 CCTV는 450만대, 자동차 블랙박스는 600만대. 미국 작가 랠프 에머슨이 "한밤에 가장 유능한 경찰은 가스등"이라고 한 것처럼, 타인의 시선은 사회의 도덕적 지수를 높여준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이런 순기능을 가장한 엿보기요, 관음증이요, 공권력의 인권침해다. 음탕하고 부패하고 폭력적인 시선이다. 서민들의 CCTV 별곡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바로 그런 악마성을 우리는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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